내년부터 논술시험을 부활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이 결정은 최근에 대학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정책들과 맥을 같이 한다. ‘글쓰기 센터’의 개설, 교수학습개발센터의 다양한 글쓰기 강좌 개설, 대학국어에서 글쓰기 강화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문제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논술시험이 입학시험으로 재도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논술시험은 어떤 주제에 대한 지식과 사고의 깊이,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평가방법이다. 이러한 논술시험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을 모방한 것으로, 우리의 대학 입학시험은 결국 프랑스와 미국의 방식을 모두 수용한 혼합형이다. 수능시험이 미국 SAT를 모방한 것이라면, 논술시험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모방한 것이다.


이러한 논술시험은 입학시험으로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논술시험은 타당한 평가방법이 아니다. 논술시험이 입학시험으로서 타당성을 가지려면, 적어도 그 내용과 형식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교육내용은 그렇지 못하며, 바칼로레아 시험을 실시하는 프랑스와는 사뭇 다르다. 프랑스의 경우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상당히 수준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철학이나 역사와 같은 인문학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룬다. 그 과정에서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와 토론 및 글쓰기가 가능하다. 비교교육학적인 관점에서 미국 고등학생들의 글쓰기와 프랑스 학생들의 글쓰기를 비교한 연구를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 결과 프랑스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강의시간에 담당 교수와 당당하게 토론을 벌일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바칼로레아와 같은 시험은 타당한 평가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이와는 다르다. 현재 학교교육에서 논쟁적인 주제를 선택하고, 깊이 있는 독서와 토론을 거친 후에,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정리한 논쟁적 글쓰기는 가능하지 않다. 최근의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이 좋은 예이다. 실제로 그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학생들은 우리 정치구조의 근간인 3권분립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탄핵의 절차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와 관련한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 무엇이 잘된 또는 잘못된 결정인지 논의해볼 수 있다. 필요하면 찬반으로 나누어 조사해보고 그 결과를 기초로 찬반 토론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를 수업시간에 다루겠다고 하면, 교육부나 학부모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이들은 학교가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을 통해서 그러한 내용에 노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학교에서 그러한 주제들이 다루어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이보다 더 좋은 논술의 주제가 어디 있겠는가? 역설적으로 그러한 주제는 논술시험에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기술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글쓰기의 종류와 역할은 사회적 산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논술시험은 우리의 사회적 환경과 거리가 있다. 우리의 사회문화적인 환경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는 아니다. 글쓰기를 단순히 인지적 활동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읽기나 글쓰기와 관련해서 우리는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다. 논설문이나 설득문은 서구 시민사회 발전과정에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개발된 산물이다. 논술 형식의 글쓰기는 민주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에 속한다. 그들은 미학적인 수필형식의 글쓰기보다는 설명문이나 또는 논쟁적이고 비판적이며 뚜렷한 자신의 주장과 논리적 근거를 갖춘 형식의 논설문을 강조한다. 그것은 학문적 글쓰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상당한 수준의 비판적 읽기 능력이 요구되며, 글을 통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적 글쓰기를 통해서 사회를 운영하고 유지시켜 나간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통적이고 권위적이며 상하관계가 뚜렷한 수직적 집단일수록 약자는 그 속에서 자신의 판단을 내리지 못하며, 어떤 문제에 대해서 뚜렷한 자신의 견해를 가지지 못한다. 설령 있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용기나 자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회도 제약된다. 그것이 일종의 미덕이고 예의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직원, 선생과 학생,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권위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사회 환경에서 좋은 논설문을 쓰기 위한 지적훈련은 힘들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의 과정 없이 권위나 힘으로써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내 생각은 어떻게 다르고, 그래서 상대방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기술(技術)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곧잘 거리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식으로 “너 나이가 몇 살이야?”하는 식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학생들의 글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분법적 또는 도덕주의적 논리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면 대학에서 논술시험을 도입하는 목적은 우리 사회를 보다 논쟁적이고 합리적이며 장유유서(長幼有序)와 같은 윤리규범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향하겠다는 전제에서 실시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논술과 같은 글쓰기는 오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글을 쓴 결과물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특히 주제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끌어내고 정리하는 과정이 글의 내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미국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몇 가지 주제를 선정하고, 여러 가지 조사와 심층적인 토론의 과정을 거쳐서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그리고 하나의 글을 완성하도록 한다. 물론 결과물도 한번 제출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적어도 두세 번 정도 수정된 글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한다. 즉 글쓰기는 사고이자 과정이며, 단순히 글로 옮기는 것이 글쓰기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오래 전부터 ‘글쓰기 센터’를 개설하고 학부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해오고 있으며, 대학 학부과정에서 글쓰기는 가장 중요한 교과과정 중의 하나다. 이와 함께 약 10년 전부터 소위 ‘전교과과정글쓰기운동(Writing Across the Curriculum, WAC)’을 통해서 글쓰기를 학부 교과과정 전체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은 프랑스와 미국의 중등교육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며, 다분히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인 필요성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우리 대학도 오래 전부터 대학작문이라는 과목이 있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며 글쓰기라는 것이 학문적 영역으로 정립되어 있지도 않다.


따라서 고등학생들의 글쓰기 과정과 훈련에 비추어보면, 논술시험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천편일률적인 답안밖에 낼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전에 그러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어보지 않은 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창의적인 논의나 대안을 담아낼 수 있겠는가? 설령 그런 답안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이 어느 정도나 그 학생의 신념과 자신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견해를 반영하고 있을지 의심스럽다. 
마지막으로 논술 시험에 정당한 평가 기준이 없다. 실은 정당한 기준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논술의 글쓰기 양식은 우리 고유의 글쓰기 양식인 기승전결식 전개방식과 서양의 서론, 본론, 결론식 양식이 혼재하고 있다. 또한 각 학문 영역별로도 글쓰기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채점하는 교수들이 어느 나라에서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조금은 다른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어느 연구에 의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학자들과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학자들 사이에 글쓰기 양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측면을 고려해 보면, 논술시험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평가도구이다. 사회겧??岵막?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논술시험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맞출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훈련받지도 않았다. 물론 중등교육에서 이런 부분을 다루어줄 수 있는 여건도 성숙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 사회가 그것을 장려할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논리적 글쓰기나 학문적 글쓰기는 대학이 좀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이지, 성급하게 고등학교나 어린 수험생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결국 학교에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입시철이면 학원가를 통해서 모법답안을 외우고, 급조된 수험교재를 통해서 피상적으로 이해한 내용을 천편일률적으로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논술시험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 근거없는 임의의 잣대를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잘라버리겠다는 생각과 별 다르지 않다. 더 이상 대학입학시험을 통해서 고등학교 교육을 왜곡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필요하다면 논술교육은 현재로서는 대학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