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우리는 늘 일탈을 꿈꾼다. 우리의 일상이 세상에 조련돼가는 과정이라면 꽤나 암울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익숙함은 낯선 처음에서 시작하여 당연하다고 강요되는 이치에 따라 걷게 된 세상의 길이다. 그럼에도 익숙한 이 길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게 되는 데에는, 지금 일상에서는 거의 봉인돼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독히도 몰입돼버린 이 익숙함은 그 너머에 있는 사고로 이끄는 성찰을 방해하곤 한다. 솔직히 나는 세상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도, 새로운 낯섦을 경험하는 것도, 또 세상의 거대한 힘에 대항하는 것도 두렵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을 떠난다. 매 방학 기간에 주어지는 두달의 시간으로 성찰의 기능을 민감하게 자극하기를 원하면서 이곳저곳을 홀로 다닌다. 그러다 다시 학기가 시작되면 일상은 성찰보다는 주어진 일들을 수행하는 책무에 몰입하기 일쑤이다. 딴딴하게 구축돼온 익숙함의 세계는 잠깐 동안의 여행으로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나는 첫번째 책 『인도음악』 이후, 아시아의 음악에 대한 책을 준비하면서 여러 아시아 지역으로 현장연구를 다니고 있다. 이십여년 전 여행했던 지역을 다시 방문했을 때 당혹스러울 정도로 변해버린 그 당연한 현실에 침울했던 것은 단지 새로운 건물이나 발전된 환경에 따른 변화 때문은 아니었다. 서양문화와 토대가 다른 아시아문화가 서구화 혹은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변화한 것은 단지 문화의 변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구화에 따른 변화는 단지 전통문화의 변화만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식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따른 기치를 추종하는 가치관의 유입이다. 특히 최근 십여년 동안 일어난 아시아 문화의 급격한 변화는 이를 반영한다. 한국에서 백인 영어 강사와 유색인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것과 성공의 여부를 구분할 때의 기준과 판단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성공의 여부는 경제적 부와 직결되며 이주민의 차별이 기인된 토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달음질치는 세상의 이 익숙한 길 또한 그러하다. 전 세계는 하나의 가치관으로 통합되고 있으며 돈은 경제이며 힘이고 권력이 된다. 이러한 가치관이 생산해낸 거대 권력의 논리로부터, 억압하는 불의로부터, 다른 방법은 없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로부터, 이들 익숙함으로부터 우리는 일탈할 수 없을까?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취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으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성찰의 기능은 깨어날 수 있다. 다만 광범위하게 작용하는 성찰의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는 선제돼야하며, 여기에는 개인에 대한 바뿐 아니라 시대에 깨어있는 의식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가치관은 개인 스스로부터 형성된 것만이 아니며 이 시대와 사회를 움직이는 다수권력의 가치가 축적된 힘의 논리이기도 한 까닭이다. 이러한 가치관에 매몰되지 않고 올바르게 자신의 사고를 확장하는 데에는 비판적 의식과 함께 성찰의 기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행과 같은 여러 경험이 잠시 동안의 일탈이라면, 일상은 그야말로 성찰의 기능이 살아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으로서 일탈이 완성되는 곳이다. 일상에서 봉인돼있는 성찰의 세계를 열어낼 수는 없을까? 이상과 현실이 만나는 공간을 꿈꾼다. ‘You may say I am a dreamer, but I am not the only one’(비틀즈의 이매진Imagine).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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