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2(윤성희 작가 「어쩌면」)

지난 8일(목) 홍대 산울림소극장에서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2’의 막이 올랐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은 천명관 작가의 「더 멋진 인생을 위해」(8~11일), 윤성희 작가의 「어쩌면」(14~18일), 김중혁 작가의 「1F/B1」(21~24일) 단편소설 세 작품을 차례로 다룬다. 최근 낭독극은 문학 본연의 글맛과 서정성을 짙게 느낄 수 있다는 매력에 소설 애독자와 연극 매니아 사이에서는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오로지 책만 들여다보며 목소리로만 감정을 싣던 기존 낭독극 형식과 달리 ‘입체낭독극’은 몸짓, 음향, 소품 등 연극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왔다. 윤성희의 단편소설집 『웃는 동안』에 수록된 작품을 입체낭독극으로 풀어낸 「어쩌면」은 수학여행을 가던 중 우연히 버스추락사로 죽은 네명의 날라리 여고생 귀신들이 겪는 일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낭독극은 특성상 기존 텍스트를 각색하지 않으므로 「어쩌면」의 낭독자 겸 배우들은 공연시간 동안 단편소설 속 텍스트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간다. 철저한 문학 텍스트 낭독에 낭독자들의 생동감 있는 연기와 말투가 보태져 마치 한편의 잘 짜진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이 소설 자체가 1인칭 시점에서 구어체로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듯 쓰여 있어 낭독과 결부시키기엔 더욱 안성맞춤이다. 네명의 낭독자가 1인칭 시점 소설을 함께 읽게 된다면 ‘나’의 역할을 맡은 낭독자 홀로 대부분의 글을 읽지 않을까 궁금할 법도 하다. 하지만 낭독극의 형식에서는 배역이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대화가 아닌 일반 서술문이나 몇 마디 안 되는 주변인물의 대사는 문맥에 어울리는 선에서 네 낭독자 모두에게 배분됐다. 이처럼 1인 다역 낭독으로 이어지는 공연인 만큼 그 과정에서 웃음을 자연스레 유발하기도 한다. 극의 백미는 극 중후반 귀신체면에 못 날면 민망할 것이라며 공중부양 할머니께 기술을 전수받는 장면이다. 여기서는 네 낭독자가 할머니 몫까지도 연기를 해야 한다. 네명의 낭독자가 동시에 할머니와 어린 여고생의 목소리를 익살스레 오가는 상황은 재미가 쏠쏠하다.

책만으로 이 소설을 접했다면 윤성희 작가의 발랄한 문체 위에 그려진 여고생들 이야기만을 따라가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극에서는 한층 더 들어가 소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인물을 등장시켜 소설의 이면을 해석할 수 있게 한다. 극의 시작과 함께 무대 오른쪽 뒤에 조용히 앉아 책 읽는 한 여성은 네 낭독자의 낭독을 따라가며 소설을 읽다 ‘끔찍하다’, ‘멍청해’ 등 우울한 문구를 마주치면 한숨을 내쉬거나 따라 읽으며 괴로워한다. 그러던 그녀도 철부지 여고생 귀신들이 제 길을 찾아나서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한줄기 희망을 얻은 듯 밝게 미소 지으며 마지막 문장 “그것도 나쁘지 않지, 어쩌면”을 읽으며 번뇌를 매듭짓는다. 남인우 연출가는 “윤성희 작가의 소설에는 주변부 인생에 대한 연민애가 기저에 놓여있어 ‘넌 그래도 지금 살아 있잖니?’라고 넌지시 물으며 삶을 위로해주는 기분이 든다”며 “이를 살리기 위해 소설과 극을 통해 위로받았으면 하는 대상을 설정해 가상인물을 내세운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어쩌면」은 겉으로 보기엔 즐거움이 묻어나는 평면적 텍스트지만 낭독과 연극이란 새로운 영역을 만나며 그 행간에 깊숙이 서려있던 슬픔이 배어나온다. 어린 나이에 어처구니없게 죽은 여고생도, 공장 외엔 갈 곳 없는 중년 노동자의 영혼도, 죽어서까지 서로 원조호떡이라며 승강이하는 할머니까지 결국 각자만의 아픔을 지닌 연민의 대상이다. 어쩌면, 「어쩌면」 에는 겨우내 우리 마음 속 깊이 얼어붙어 있던 상처에도 봄바람이 불어 위로해주길 바랐던 소설가와 연출가의 고민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제공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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