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낙우조각회 창립 50주년 전시회

오는 26일(목)까지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낙우조각회의 창립 50주년 기념전 「≪SCULPTURA LUX MEA≫ 낙타, 반세기를 걷다」가 열린다. 낙우조각회는 1963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 출신 젊은 조각가 6명이 모여 만든 한국 최초의 조각단체다. 50주년을 맞이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낙우조각회 회원 60명 각자가 엄선한 총 61점의 작품으로 꾸려졌다.


이용덕 교수(조소과)의 「스탠딩(Standing)」(2011)은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불특정 인물을 조각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이 교수는 연한 다홍빛 트렌치코트를 걸친 여자가 쓸쓸한 눈빛을 띤 채로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을 음각으로 새겼다. 언뜻 보면 이 여인은 입체감이 도드라져 볼록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어느 샌가 이 여성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 푹 패인 공간만 남는다. 이 여인은 양감을 띠며 존재하는 듯 보일 뿐 실제로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허상으로서 실재하는 이 여인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들 역시 만나는 순간에는 실재하는 것처럼 인지되나 지나쳐버린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 속 인물로 전락한다. 그러나 우리의 뇌리에 뚜렷이 박히지 않았을지라도 이 사람들은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는 어느 곳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로 살아갈지 모른다. 이처럼 이 작품은 주위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감 없는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던져준다.

한편 야외전시공간에서는 연꽃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이 잔잔한 수면 위를 뱅뱅 돌고 있다. 바로 ‘떠 있는 조각(floating sculpture)’ 작품인 백현옥 명예교수(인하대 미술교육과)의 「오행도」(2011)다. 이는 지표에 고정된 기존 조각과 달리 물이나 연못 위에 뜬 상태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그 형태 자체로써 철마다 열매를 맺는 꽃의 섭리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생명 잉태를 상징하는 구 모양의 꽃술을 통해 응집된 생명력을 고스란히 전한다. 백 교수는 “작품이 물 위에서 회전하는 모습이 오행사상에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상생하며 생명이 순환하는 양상과 닮아있어 「오행도」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낙우조각회의 ‘낙우’는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故김종영 교수(조소과)가 ‘조각의 길은 낙타가 거친 사막을 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이름에 걸맞게 낙우조각회는 50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사막같이 척박했던 조각미술계를 비옥하게 일궈왔다. 작고한 초대작가부터 신진작가의 작품을 한데 아우른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조형미학이 형성돼 온 역사 한 자락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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