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치적 부담으로 주요 인물과 증거에 대한 수사 지지부진해
진상규명 방안 둘러싸고 여·야는 특검 도입안과 청문회안으로 대립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지난달 30일 KBS 새노조가 공개한 방대한 분량의 민간인 사찰 문건이 세간의 분노를 샀다. 이에 민간인 사찰 진상규명에 아무런 진척을 보여주지 못한 검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역시 거세지고 있다. 진상규명을 둘러싼 공방은 계속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요원한 상황이다.

검찰은 처음부터 불법사찰의 중심인물로 지목돼 온 인물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청와대 공무원 감찰 부서도 아닌 고용노사비서실의 이영호 비서관이 사찰보고를 받고 있다는 의혹은 처음 사건이 드러난 2010년 7월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영호 비서관을 기소대상에서 아예 제외했으며 기소대상마저 한달 후인 8월에 발표했다. 당시 구속기소된 공직윤리지원관실 이인규 전 지원관 등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증거 불충분 등으로 이후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야권은 비선(秘線)의 핵심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 내부의 영남·포항 세력인 ‘영포회’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왔으나 이 역시 수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주요 증거들 역시 수사하지 않은 채 외면했다. 압수수색 직전 사찰내용이 담긴 하드디스크가 파손된 채로 발견된 것은 공직윤리지원관실 내부 소행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부 은폐의혹이 현실화된 상황을 외면하고 검찰은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 이후 청와대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에 하드디스크 파손에 관련된 ‘대포폰’(신분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등록해 사용하는 휴대전화)을 지급했다는 보다 결정적인 증거가 드러났다. 그럼에도 검찰은 “잘 아는 사이인 직원이 대포폰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을 뿐 어디에 썼는지는 몰랐다”는 진술만 듣고 수사를 끝냈다. 지난 2010년 10월 일어난 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로비 의혹에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수사에 착수한 것과는 대조적인 행동이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장진수 주무관의 양심고백을 계기로 지난달 16일부터 재수사가 시작됐지만 수사에 진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1차 수사처럼 몇몇 하위 인물만 구속했을 뿐 비선의 실체는 전혀 밝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청와대 최종석 고용노사비서실 행정관을 구속하고 이영호 전 비서관을 다시 구속했지만 이는 모두 장 주무관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 소극적 수사였다. 검찰은 KBS 새노조가 공개한 민간인 사찰 관련 문건 2,619건에 대해서는 “이전 수사에서 확인했으며 범죄가 인정되는 부분은 기소했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검찰이 이같은 부실수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청와대를 대상으로 한 수사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를 건드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재수사 결과가 1차와 거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장동엽 간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사찰 사건의 책임자인 전 청와대 수석 권재진 법무부장관을 교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검찰에게 경고 신호를 준 것과 마찬가지”라며 “수사팀은 갖고 있는 증거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이처럼 검찰의 수사가 계속 지지부진한 가운데 새로운 수사방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은 지난달 31일 특별검사(특검)에 의한 수사를 처음 제안했다. 특검이 들어설 경우 존재 자체로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강제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2년 동안 지지부진한 검찰의 수사를 특검이 재수사하며 감시하면 검찰은 보다 치밀한 수사를 단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된다 하더라도 수사 기간과 결과 발표 등을 고려하면 6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상명 교수(순천향대 법학과)는 “특검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준비기간과 수사기간만 합해도 80일 이상 걸린다”며 “특검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특검의 임명을 대통령에게 요청해야 하기 때문에 특검의 임명 주체가 이명박 대통령이 되는 문제점도 있다”는 한계를 밝혔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진상규명 청문회 개최를 주장하고 있다. 청문회는 빠른 시일 내에 개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건 처리에 있어 특검보다 신속한 진행이 가능하다.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도 보다 수월해진다. 하지만 새누리당측은 청문회는 강제력이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검법과 청문회 간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각각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입법 담당 김미영 팀장은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특검이 도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검법과 청문회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여·야의 합의가 우선”이라며 “총선이 끝난 후 5월 임시국회가 열린다면 특검법 통과 여부 등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원호 교수(정치외교학부)는 5월 임시국회 성사 여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특검법 도입이 임기가 끝나는 18대 국회에서 처리하기는 “부담이 지나치게 큰 사안”이라며 “총선에서 승리한 세력 역시 민간인 사찰 문제를 새로 열리는 19대 국회에서 처리해 이미지 쇄신을 꾀하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19대 국회는 오는 6월 5일 개원한다.

이어 박 교수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전략이 이 대통령과의 차별성이기 때문에 특검을 실시하는 방향으로 굉장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궁극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장동엽 간사는 “총선 등 대형 이슈에 묻혀 민간인 사찰 진실규명은 나날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며 “사건을 계속 덮고 있는 검찰을 제치고 진실을 밝히려면 사회 각계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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