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와 인문학 연계의 계기가 될 것”

▲조선시대 소유지 그림 중 하나, '소상팔경도' ©
지난 15일(토) ‘미술사와시각문화학회’는 「조선시대의 회화와 생활 문화」를 주제로 포럼을 열어 미술작품을 통해 과거의 문화를 추론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수미 연구원(국립전주박물관)은 「태평성시도에 보이는 상업 공간의 시각화」에서 ‘태평성시도’를 통해 상업 공간이 어떻게 시각화됐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태평성시도’는 당대 시장에서 생활하던 인물들의 다양한 활동상을 그린 것으로, ‘태평(太平)’은 평화롭고 번성한 세상을, ‘성시(城市)’는 성 안의 상업 도시를 말한다. 이수미 연구원은 “원근법의 사용이나 인물의 복식 등에서 ‘태평성시도’는 오륜행실도 등 조선 후기 풍속화와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며 제작시기를 1790년대 전후로 추측했다. 그는 “당시 성시에 대한 구상은 중요한 화두였으며, 많은 화원(畵員)들이 화성 신도시 건설안의 시각화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태평성시도’에 보이는 행인들이 대부분 빈손으로 물건을 고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물물교환보다 화폐를 사용했음을, 각종 채소와 과일 가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당시 도시 근교를 중심으로 상업적 농업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며 “조선회화사에서 ‘태평성시도’처럼 구체적으로 상업활동에 주목한 회화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이수미 연구원은 “조선의 현실을 반영할 뿐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가 상업이 번성하는 사회를 지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태평성시도’, 상업 번성을 지향했던 후기 조선 사회 반영

 

 

「소유지 그림의 시각언어와 기능 ‘석정처사유거지’를 중심으로」를 발표한 조규희 강사(고고미술사학과)는 ‘소유지 그림’을 분석해 작품의 주인공과 대상이 된 지역을 추적한다. ‘소유지 그림’이란 16세기 즈음 등장한 그림으로, 개인의 소유지 주변 풍경을 그린 것이다. 이는 당대 재지사족(在地士族)이 네 차례의 사화를 겪으면서 사유토지를 생활 기반으로 확고히 하는 풍토가 생긴 것과 관련이 있으며, 주로 영남사림들을 중심으로 확대된 회화식 지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바다와 성곽, 봉수대(烽燧臺)를 묘사한 ‘석정처사유거지’의 배경은 조선시대 전국 다섯 개의 봉수로 중 해안가를 지나가는 유일한 봉수로가 있는 전남 해안지역일 것”이라며 “‘석정처사’는 당시 전남 지역의 대표적인 지주 가문인 해남윤씨 가문의 윤강중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전란을 통해 전택의 소실을 경험했던 17세기 문인들은 후손들이 찾을 수 있도록 소유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했다”며 “소유지 그림에 반영된 지형학적 관심과 구체적이고 생생한 회화적 묘사는 조선시대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포럼에 참여한 이주형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이번 포럼이 미술사 연구의 주제와 방법을 다양화하고, 인문학과의 학제적인 연계를 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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