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 여전히 그대로인 현실
그러나 지속되고 있는 투쟁
절망의 순간에서 그들을 일으키는 것은
끈기 있게 맞잡은 연대의 손길

영화 『매트릭스』의 본격적인 시작은 모피어스가 앤더슨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내미는 순간부터다. 자신이 항상 마주쳐왔던 현실이 더이상 현실이 아니게 되는 자기 부정의 기로에서 그는 기꺼이 모험을 택한다. 빨간 약을 선택해 입 안에 털어 넣는 순간 매트리스 속 앤더슨은 마침내 그리스어로 ‘새로움’을 뜻하는 ‘네오’로 화한다. 그러나 네오가 된 앤더슨은 한동안 갈팡질팡한다. 기계에 붙어 연명하고 있던 절망적인 자신의 실제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거짓된 세계에 맞서 싸워야 하는 자기 운명을 부정하기도 한다. 전부라고 생각했던 작은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시야에서 불현듯 이방인인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바로 극심한 혼란스러움과 절망감이 교차하는 ‘빨간 약의 시간’이다.

지난 총선 이후 유독 많은 사람들에게 빨간 약의 시간이 찾아왔던 것 같다. ‘멘탈 붕괴’ 바람이 도탄에 빠진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휩쓸었다. 잠잠한 풍경 속에 모든 것은 그대로 있었다. 강정마을 구럼비를 발파하는 소리와 길바닥에서 공영방송을 외치며 파업하는 기자들의 모습, 그리고 대한문 앞에 놓인 쌍용차 노조의 희생자 영정과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다른 조합원들도. 잠시나마 환상에 달떴던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빨간 약의 시간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당혹스러운 침묵 속으로 고였다.

그로부터 한달, 그 당혹감은 곧 손에 잡히는 현실로 닥쳤다. 최근 경찰이 파업 100일을 넘긴 MBC 노조의 간부 몇몇에게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길어지는 파업이 좀체 해결의 국면으로 나아가지 않는 기색이다. 또 지난 15일(화)에는 해군제주기지사업단이 수중 작업을 비롯해 5월 말이면 애초 계획했던 구럼비 발파 작업이 완료된다고 발표했다. 강정마을 주민 450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무효처분소송은 여전히 대법원에서 공방 중이고 이미 끝났다는 판단에서인지 이제 주요 언론에서도 강정 관련 의제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편 5·18 민주화운동 32주년을 맞은 지난 18일은 쌍용차 22번째 희생자인 故 이윤형씨의 49재였다. 떠나간 이는 말이 없고 여전히 동료들은 터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진부한 ‘그대로’의 풍경 속에도 한 가지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사실이 있다. 총선 이후 누구보다 혹독한 빨간 약의 시간을 겪었을 파업 언론인들과, 강정주민들, 그리고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 역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열기로 부풀었던 관심의 거품이 꺼지고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돌려 다시 쳇바퀴 속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때에도 여전히 절망하지 않기를 택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얼핏 숭고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배신과 소멸과 죽음을 경험한 이들의 끊이지 않는 투쟁이 비단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라는 것도 그 의미를 더한다.

이들이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단지 태생적으로 그들이 강철 같은 멘탈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끈기 있게 맞잡고 있는 연대의 손길들이 매번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심리치료와 여러 촛불 문화제, 바자회, 희망식당 등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시민들의 연대가 눈에 띈다. 절망의 순간 다시 사람들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었다.

꿈꾸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성숙하게 영글기 위해서는 현실의 담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담을 넘기 위해서는 담에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게 된 순간이야말로 정말로 새로운 것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빨간 약의 시간 동안 겪었던 절망의 경험은 ‘빨간 약 이후의 시간’에 더 힘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흔들리지 않게 기억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담을 넘는 것은 서로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킬 때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도종환, 「담쟁이」) 이윽고 담을 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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