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우위’의 국가 통제 대학 정책

19세기 후반부터 상당수의 서양 근대 용어가 일본인들을 통해 번역된 것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앞서 진행된 일본의 근대화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서 동아시아 근대 고등교육체제의 형성ㆍ발전에 미친 근대 일본의 영향을 정리해 보면 크게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관학을 사학보다 우위에 두는 대학의 중층적(重層的) 구조다. 일본 근대 대학은 1886년 제국대학이 설립되는 시점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877년에 도쿄(東京)대가 설립되었지만 이는 외국어로 진행되는 전문교육기관에 불과한 것으로, ‘제국대학령’에 의해 일본 고등교육체제는 관학인 제국대학으로 대표되는 ‘대학’과 실질적 대학이면서도 공식적인 대학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던 사립 전문학교인 ‘비대학’이 수직적 계열을 이뤘다. 비록 일본의 사립대학들은 1918년의 ‘대학령’에 의해 관립 대학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됐지만, 관학 우위의 중층적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둘째, ‘사립학교령’(1899)을 통해 근대 일본의 대학설립은 미국형 ‘기준판정(基準判定)’ 방식 대신 유럽형 ‘설치인가(設置認可)’ 방식을 채택했다. 전자는 자유롭게 대학을 설립하되 관련단체의 자율규제를 통해 질을 관리하는 방식이며, 후자는 ‘국립 우위’의 국가 통제방식으로 국가가 같은 형태의 대학을 전국 각지에 세우는 ‘동형번식(同型繁殖)’ 정책이다. 서울과 대만에 세워진 ‘경성제국대학’(1924)과 ‘대북제국대학’(1928)은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 이로 인해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는 일체 사립대학을 인가해 주지 않았고, 이는 자유로운 학문 연구와 발전을 저해했다.


셋째, 외국인 유학생 유치정책을 들 수 있다. 1895년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100여 명의 한국유학생이 입학한 것을 비롯해, 와세다(早稻田)대는 1904년에 중국유학부를 설치하고 청나라에 대학 관계자를 파견하여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렸다. 러일전쟁 직후 무려 2∼3만명의 유학생들이 일본으로 몰려들었다. 표면상 “학문은 일국, 일개인의 점유물이 아니다”, “일본은 대륙으로부터 학술[] 문자 등 문화적 혜택을 입었기에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등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관학 중심 대학정책으로 경영난을 겪던 사학들에게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학교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은 외국유학생 10만명 계획을 추진해 2003년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 이는 1992년 250만명이던 18세 인구가 2001년에 150만명으로 줄어든 것과도 관련된다. 최근 와세다대가 중국 장쑤(江蘇)성의 명문 중[]고 병설학교에 ‘와세다 진학반’을 설치하는 등 일본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990년대 이전 일본에 유학하는 사람들이 적었던 것은 그동안 일본의 대학들이 유럽의 대학들처럼 박사학위 수여에 인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의 대학들은 지식정보화의 시대를 맞아 활발한 학생[]교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학문의 국제화 물결 속에서 대학간 국경 없는 학술교류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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