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들의 자발적 정치참여 통해 당내 주요사항 결정하는 진성당원제…
당내 패권주의로 악용될 수 있어 제도 완화 및 보완 필요성 제기돼

통합진보당(진보당) 위기의 중심에는 진성당원제가 있다. 진상조사위가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 사례로 지적하고 나선 당비 대납, ‘유령당원’의 존재 등이 진성당원제의 악용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당원명부 전면 재검증과 비례대표 총사퇴를 요구하고 나섰고, 당권파는 “당원이 뽑은 비례대표에 대한 총사퇴 요구는 진성당원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학신문』은 진보당 운영의 근간이 돼 온 진성당원제의 명과 암을 짚어 봤다.

◇진보정당의 자부심, 진성당원제=진성당원제라는 용어가 우리나라 정치에 출현한 것은 지난 2000년 민주노동당이 출범하면서다. 진성당원제는 당원이 내는 소액 당비로 당을 운영하고 당원들의 자발적인 정치활동 참여를 통해 공직후보 선출을 비롯한 당의 주요 정책과 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거대 정당들이 소수의 지도적 인사에 의해 하향식으로 정당을 운영하는 간부정당(cadre party)이었다면 민주노동당은 진성당원제를 도입해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당원들에 기반한 대중정당(mass party)을 지향했다. 그 바탕에는 다수의 진성당원들이 상향식으로 당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때에 민주적인 진보정당 건설이 의의를 갖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진보당에는 현재 당비(월 1만원·저소득자 5,000원)를 내는 진성당원이 7만명 가량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정당의 상은 유럽의 노동당이나 사회당처럼 특정 계급의 당원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한국 기성 정당의 간부정당·포괄정당(catch-all party)적인 속성과 구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성당원제는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국 정당들이 선거철을 제외하고는 당 활동이 거의 없는 ‘페이퍼 당원’들로 이뤄져 그 취약한 기반을 진성당원제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정착됐지만 정당구조는 안정되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서 진성당원제는 정당정치 정상화의 한 방안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역사가 깊은 서구 민주주의 정당들에서는 당원들의 활동으로 당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해 진성당원제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한국에서도 정치개혁 바람이 불었던 16대 대선과 17대 총선을 전후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기간당원제와 책임당원제라는 이름으로 진성당원제를 모방해 당원제도의 손질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당비 납부율이 5% 이하에 머물러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파 패권주의로 악용된 진성당원제=그러나 최근 당권파를 둘러싼 진보당의 파행이 부각되면서 진성당원제가 특정 정파의 당 장악 도구로 악용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조직적 동원이 가능한 일부 정파가 진성당원제를 통해 당 내 의사결정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사당화(私黨化)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특히 주요 당직자 선출 방법으로 2004년부터 도입된 1인다표제가 진성당원제와 맞물리면서 특정 정파의 요직 장악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선출에는 1인4표제, 12명의 최고위원 선출에는 1인12표제가 적용됐다. 이러한 선거 방식에서는 조직적 동원이 가능한 정파가 특정 후보군을 지정해 몰표를 던질 경우 결집력이 높은 정파의 승산이 높아진다. 당원에게 당권을 주기 위한 진성당원제가 1인다표제와 결합하면서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사태 당시에도 일부 정파의 당직 장악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종북주의 논란이 중심적이었지만 그 실상에는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당시 패권주의적 당 운영을 해소하기 위해 당내 정파들을 공식적으로 등록하는 정파등록제 등이 검토되기도 했으나 논란 끝에 도입되지 못했다. 민노당 당원으로 활동하다 2008년 분당사태로 탈당한 박모씨(26)는 “민주노동당은 조직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정파가 당권을 장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당권을 당원에게 준다는 게 진성당원제의 취지였지만 정파에 속하지 않은 평당원의 의견은 거의 반영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내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면=당 내 일각에서는 진성당원제의 완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비례대표 진퇴 문제 결정을 위해 제시한 ‘당원총투표 50%, 국민여론조사50%’ 방안이 대표적이다. 주요 의사결정의 주체를 진성당원으로 한정한 것이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로 이어지고 당비 대납, ‘유령당원’ 등의 병폐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개방적 의사결정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유시민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국민참여당계는 당의 외연을 확대하고 국민적 눈높이에 부합하기 위해 대중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원들 사이에는 진성당원제 완화가 진보당의 창당정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반발이 만만치 않다.

반면 진성당원제를 보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문제는 진성당원제를 파행으로 몰아간 부정적 행태이지 진성당원제 자체가 아니며 당원명부 관리의 투명성 강화, 다수파의 전횡 방지를 위한 견제책 마련 등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폭력행위자의 출당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던 통합진보당 대학생당원 성준식씨(25)는 “선거 관리에 문제가 있었을 뿐 진성당원제에 문제가 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진보정당 건설의 목표를 고려할 때 아래로부터의 진성당원제는 반드시 지켜가야 하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포괄정당(catch-all party): 계급 등 특정한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신 사회집단의 최대다수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정당. 정당 소속감이나 정체성이 약해 정당구조를 불안정하게 할 수 있지만 단기적인 선거승리에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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