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칼부림, 나주 아동 성폭행 사건 등 흉악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치안에 관한 시민들의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재정 자립도에 따라 범죄 예방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격차가 발생해 범죄 발생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신문』은 2011년 성범죄 발생 건수 1위를 차지한 관악구 사례를 바탕으로 범죄예방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의 양극화를 진단해봤다.

재정 부족으로 CCTV 수도 부족

범죄 예방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방범용 CCTV이다. CCTV는 계획적 범죄자들이 자신이 검거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게 함으로써 범죄 예방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에 지자체들은 최근에도 CCTV의 개수를 점점 늘리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투명한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 발표한 ‘2000년 이후 10년간 서울시 각 구의 방범용 CCTV 설치현황’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재정자립도가 높은 강남구와 송파구의 CCTV 수는 각각 725대, 477대가 증가했다.

하지만 관악구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CCTV 설치 상황이 열악하다. 10년간 고작 66대의 CCTV만이 설치됐다. 이는 서울시 내에서 가장 적은 숫자이며, 인구대비 CCTV의 수 또한 강남구에 비해 10%에 불과한 수준이다. CCTV의 화질에도 차이가 있어 범죄의 검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관악경찰서 생활안정계 정연환 경위는 “관악구의 경우 강남구에 비해 CCTV의 화질도 좋지 않은 편”이라며 “야간에 모자를 쓴 채로 CCTV에 찍히면 사실상 얼굴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관악구가 이처럼 인구대비 CCTV의 수가 현저히 낮고 화질이 좋지 않은 CCTV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CCTV 설치에 사용된 구별 예산을 보면 관악구의 경우 약 5억 6천만원으로 강남구 146억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관악구청 홍보전산과 유강 주무관은 “CCTV에 대해 주민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요구를 들어주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환경 차이가 범죄율 차이로 이어져

또 다른 범죄 예방 인프라로 전문가들이 거론하는 것은 ‘셉티드(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개념이다. 셉티드는 도시환경, 건축물 설계를 통해 범죄 3요소인 범죄인, 범행 대상, 범죄 기회를 차단하는 것으로 1971년 미국 도시설계학자 레이 제프리의 논문에서 처음 소개된 이론이다. 셉티드는 △자연적 감시(통행로, 출입구 등을 시각화 시킴) △접근 통제(울타리, 담장 등을 설치) △영역성의 강화(사적영역을 강화시켜 범죄욕구 차단) △활용 증대(통행이나 이용도를 높임) △유지 관리(시설물 등의 관리 및 보수)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자연적 감시’의 경우 대표적인 예로 가로등을 기존의 주황색 나트륨 불빛에서 푸른색 메탈등으로 바꾸면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져 범죄 감소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연구가 있다. 이에 강남구의 경우에는 2008년부터 기존의 가로등을 푸른빛 가로등으로 바꿔왔다. 표창원 교수(경찰대학교 범죄심리학과)는 “지금까지는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지, 그들에 대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등의 사람 중심적 접근이 주를 이뤘다”며 “이제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해 어떤 장소·환경이 범죄를 부추기느냐에 주목하자는 것”이 셉티드의 의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게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위의 메탈 가로등 설치와 같은 환경개선 사업은 막대한 예산을 요하는 것들이어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이 제도를 시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연환 경위는 “관악구에서는 셉티드를 시행하기도 힘들뿐 아니라 만약 한다 해도 시민들이 예산낭비라며 민원을 제기할 것”이라며 “셉티드에 대한 무관심에 연유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관악구의 예산이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간 재정의 차이가 범죄 발생의 차이로 이어지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는 10월 서울시는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해 국제 셉티드 세미나를 개최하고 서울시 디자인정책에 대한 전면적 도입을 선언하기로 했다. 인천시도 올해 말까지 인천시 실정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2013년 상반기 중 건축 조례 및 지침을 제정·시행할 예정이다. 지역별 빈부격차에 관계 없이 모든 지역이 범죄 예방에 있어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