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바람과 맞물린
엄벌주의의 목소리
중요한 문제 도외시하고
지옥으로 향하는 게 아닌지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일, 그것이 자비입니다. 그런 자들을 용서하는 일, 그것은 야만입니다. 폭군의 잔인함은 그저 잔인함일 뿐이지만, 국가의 잔인함은 미덕입니다”(로베스피에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범죄 사건들이 발생하면 주기적으로 사형제도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곤 한다. 더구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잔혹 범죄 등 모두의 공분을 사게 하는 나쁜 죄질의 범죄들이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지금,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죽음을 선포하는 것은 비탄에 빠진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가장 적합한 ‘보상’이라는 시각이 선거 바람에 맞물려 크게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엄벌주의의 강풍이 불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인자들에게 죽음을, 성 범죄자들에게 거세를, 수상한 행인들에게는 불심 검문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자명해 보인다. 이 해결책들은 모든 종류의 문제를 들끓는 파토스의 차원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직관적이고 단순 명료하다. 중요한 것은 복수이고 범죄 척결에 의한 즉각적인 안정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시대로부터 이어진 감정적 충동과 '편의주의'의 극치다.

어쩌면 편의주의는 절정에 달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주류 판매와 음주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대학의 축제 때나 기숙사 등에서도 주류 판매를 비롯한 일체의 음주 행위가 금지된다. 법안의 실효성이나 성인인 대학생들의 주권(?) 침해를 따지기 전에 우선, ‘취중 범죄를 예방하려면 시민들이 음주를 자제하면 된다’라니 이 얼마나 단순하고 명료한 차원의 사고인가. 이만하면 역사상 최악의 분위기 파악 사례로 손꼽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드세요”라는 명대사의 갖가지 다른 버전이 떠오른다. “성 범죄가 문제가 된다면 자르세요”, “음주 폭력이 문제라면 술을 금지하세요”, “시민의 자유가 방종으로 치달을 수 있다면 자유를 말살하세요”.

분위기 파악 못하는 편의주의가 ‘지옥’으로 향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문제를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근래에 보도된 범죄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응축된 절망과 두려움, 분노의 순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폭력성을 배태한 이 감정의 덩어리들은 여성, 어린이, 불시에 습격당한 행인처럼 하나같이 더 약한 쪽으로 향했다. 지금 나라를 떠돌고 있는 엄벌주의라는 편의적 발상은 절망 위에 더 큰 절망을 얹어 약한 자들을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격리'시켜 혹여 분출될지 모를 폭력의 가능성을 이 세상과 단절된 동굴 속에 가둬버리자는 논리다. 더구나 이를 위해 공포의 주재자가 돼야 하는 공권력은 이미 일반 국민에 대한 사찰과 협박을 공공연히 일삼고 있어 도무지 신뢰하기 어렵다. 비이성적 파토스를 동력으로 하는 ‘복수의 화신’으로서의 국가. 이쯤이면 ‘지옥’도 불가능한 소리는 아니다.

“주취폭력 등 음주의 사회적 폐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어”와 같은 보건복지부의 보도 자료를 보면 이번 조치가 몇 달간 한 일간지와 서울경찰청이 합심해 주도하고 있는 이른바 ‘주폭 척결 캠페인’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프레임에서는 자칫 ‘술 권하는 사회’에도 일정 정도의 책임이 있는 점을 간과할 우려가 있지 않을지. 일례로 최근 밤샘노동을 철폐한 기업의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상하는 한 일간지 기사 말미에는 “앞으로 술 마시는 문화가 줄어들 것 같아 업종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유흥업소 주인의 발언이 소개됐다. 그렇다면 ‘주폭 척결’이라는 거창한 표어를 위해서는 과연 사람들의 음주 습관만 척결돼야 될까?

처음 언급했던 인용구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올렸던 프랑스 공포 정치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가 남긴 말이다. 자유를 위해 자유를 억압했다는 평가를 받는 로베스피에르는 그 역시 그가 올려 보낸 무수한 사람들처럼 단두대 위에서 짧았던 통치 기간을 끝냈다. 국가의 잔인함은 결국 그에게도 미덕이 아니었던 셈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