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선원들이 초록으로 덮인 섬을 보고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의 ‘포모사’(Formosa)라고 불렀던 대만. 원(元)대 이후 중국 본토와 서구 열강의 지배가 교차하다가 청(淸)대에 완전히 복속돼 본토의 지배를 받는다. 청일전쟁 후 일본의 식민지로 넘어갔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국민당 군대가 상륙해 정부를 구성한다. 그러나 그들의 부패와 본성인(本省人)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1948년 2·28 궐기로 촉발된 반정부시위가 대만 전역으로 확대됐으나, 본토로부터 증원된 국민당 군대가 대대적 유혈진압을 강행해 약 3만명의 주민이 살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대만에서 오른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일본의 오키나와현이 있다. 16세기까지는 여러 섬이 모여 류큐(琉球) 왕국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었고, 아시아 각지와의 교역을 통해 문물이 번창했다. 당시 중국의 조공체제에 속해 있었으나, 1609년 일본 가고시마 사츠마의 침공을 받아 왕국이 제압되면서 에도막부 체제에 편입됐고,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하나의 현으로 일본정치체제에 완전히 통합된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1945년 4월부터 약 3개월간 일본군인 9만여명, 오키나와 주민 9만여명, 미군 1만2천명이 전사했다. 이후 미군에 의해 점령돼 통치를 받다가 27년 후인 1972년, 일본으로 복귀됐으나 여전히 미군 기지가 섬 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어 이의 완전 이전을 위한 평화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제각각 기구한 운명을 지닌 대만과 오키나와 사이에 무인도 몇 개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에서는 센카쿠(尖角)열도라 부른다. 바다 생물들이나 잠시 쉬어갈 이 섬들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서로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갈등을 키워오다 최근 일본이 이 섬들을 국유화하겠다고 발표하자 중국과 대만은 즉각 순시선 및 군함을 섬 부근에 급파해 날카로운 대치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로 인해 두 민족 간의 반감은 극에 달해 상호 문화 교류 행사마저 줄줄이 취소, 연기되고 각지에서 반일-반중시위가 조직돼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 난무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미명 아래 그 동안 수많은 목숨들이 희생돼 구천을 떠도는데도 여전히 그것이 현실에서 맹위를 떨치는 것을 보노라면, 프랑스 사상가 에르네스트 르낭의 탁견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민족의 핵심은 모든 구성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많은 것을 망각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세 류큐왕국은 중국, 일본, 조선, 베트남, 타이,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등과 광범위하게 교류하고 그들의 영향을 수용하면서 독창적인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 당시 류큐왕국을 둘러싼 경계선에는 군사적 대치가 아니라 다양한 문명의 공존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풍요로움이며, 망각해야 할 것은 근대민족국가의 광기다. 아니 그것마저 기억해야 하겠다. 그 몽환적 깃발 아래 자행되는 헛된 살육을 조금씩이라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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