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가흠이 등단 12년 만에 첫 장편을 냈다. 2001년 단편소설 『광어』로 등단해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등 시대의 불편한 현실을 아이러니와 판타지로 녹여낸 작품들을 발표해온 작가는 이번 소설『나프탈렌』을 통해 ‘죽음’을 흔적도 없이 소멸하는 나프탈렌으로 비유해 풀어낸다. 저자는 이번 소설의 제목 ‘나프탈렌’에 대해 “냄새만 남은 채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죽음과 소멸이라는 주제를 통해 나의 아버지 세대 모습을 담고 싶었고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인생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전한다.

『나프탈렌』의 배경은 육체와 마음의 병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늘수련원’이다. 하늘수련원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을 통해 전체적인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조명한다. 『나프탈렌』의 주인공 김덕이 여사는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像)으로 그려지며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딸 양자를 위해 자신의 몸이 망가져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홀로 수련원을 경영하는 수련원 원장도 노망난 노모를 모질게 대하지만 노모가 개울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자 정신을 놓아 버릴 만큼 죽은 노모를 그리워한다. 정신줄을 놓은 원장 때문에 수련원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서 하늘수련원과 그 구성원들은 그들이 맞이한 죽음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올 죽음 앞에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노교수 백용현은 6·25 전쟁 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후 평생 죽음을 거부하고 무서워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 트라우마는 백 교수에게 죽음을 향해 늙어가는 자신을 부정하게 하며 ‘젊음’에 목매게 했다. 그에게 죽음은 인정할 수 없는, 여전히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백 교수는 30여년 만에 재회한 전 부인 손화자의 죽음 앞에서 그동안 외면했던 두려움을 직시하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도 닥쳐올 죽음을 통해 그동안 그가 가졌던,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되돌아본 것이다. 결국 백 교수는 하늘수련원에 홀로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나프탈렌』은 각 개인의 이야기를 시·공간을 오가는 복잡한 구조 속에 녹여내며 죽음은 삶과 연결돼있다는 역설적인 주제를 부각시킨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저자는 다른 이의 죽음을 자신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느끼게 하는 거울로 그린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를 피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놓고 떠나는 것, 그것이 다른 이를 새롭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를 때 “‘원래 왔던 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저자의 말은 곧 죽음이 새로운 출발점임을 일깨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묶이는 개개인의 이야기 『나프탈렌』. 사람들은 죽음을 거부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조금씩 사라질 수밖에 없다. 말없는 그 흔적만이 『나프탈렌』에 배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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