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 민주화의 일환으로 재벌 개혁 논쟁이 한창이다. ‘동반성장 추구’, ‘상생협력 실현’, ‘중소기업부 신설’ 등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를 끊어내기 위한 대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6·25 전쟁 직후 폐허가 된 한국은 정부의 지원을 받은 몇몇 기업들에 의해 20년도 채 되지 않아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당시 정부는 ‘가능성이 보이는’ 기업들을 집중 지원·육성했고, 이들은 재벌로 성장해 한국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난 후에도 재벌 중심의 정부 지원은 계속됐고, 결국 중소기업은 몰락하고 기형적인 경제구조가 형성됐다. 이러한 경제 성장 이면의 부작용을 본격적으로 해결하자는 논의가 경제 성장 후 반세기 가량이 지난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2012년 지금 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치 아래 학계 연구 지원제도를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1998년부터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연구재단 심사에 통과한 등재학술지 전체에 발간경비를 일부 지원해왔다. 또 1999년부터 2단계에 걸친 BK21 사업을 통해 석·박사과정생 및 신진연구인력(박사후 연구원 및 계약교수)의 양성을 지원해왔다. 그런데 2015년부터는 몇 개의 우수학술지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학술지 지원 방식을 전환하며, 2013년 최종 종료되는 BK21 사업과 WCU 사업을 통합한 새로운 후속사업 역시 우수 사업단에 집중 지원하기 위해 사업단 지원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사실 정부의 지원 아래 한국의 학계는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SCI 논문점유율 세계 11위, 발표논문의 피인용지수 세계 14위를 차지했다. 이제 한국의 학계도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선택과 집중’은 학계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양적 발전이 어느 정도 이뤄진 한국 학계에 있어서는 말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소위 학계의 주류라고 불리는 주요 학회나 사업단에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이 쏠릴 것이다. 주요 연구단체는 정부의 지원 없이도 충분한 연구자들이 확보되지만 학문 중에서도 비주류에 해당하는 학문, 한 학문 내에서도 비주류에 해당하는 연구는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지원이 끊긴다면 가장 기본적인 연구조차 진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연구단체들이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연구 분야와 주제로 선정할 것이기에 서로 비슷한 연구만을 양산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학문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우리는 ‘학계의 재벌’이라는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연구 민주화’를 고민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발전 기반이 부족하고 단기적 성과가 없다고 해도 이러한 사실이 신생 학문, 혹은 소외 학문의 연구가 가치 없는 것이라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과연 현재 학계를 주도하는 학설 중 얼마나 많은 담론들이 등장 당시부터 우위를 점했겠는가. 학계에 선택과 집중이 위험한 이유다.

얼마 전까지 ‘노벨상’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이 각각 생리의학상과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기에 유난히 한국에게는 올해의 결과가 쓰리게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노벨상에 연연해 풀죽어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노벨상을 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벨상을 탈 가능성이 있는’ 주요 연구단체에만 정부 지원이 몰려서는 안 된다. 여전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신생학문이나 소외학문 등 다양한 학문들이 함께 공존하는 ‘학문적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여야 한다. 노벨상은 그 이후에 따라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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