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인신매매 방지와 성산업 규제를 위한 입법과제

어두운 필름으로 창문을 가린 봉고차가 사람들을 납치해 인신매매한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인터넷 게시판에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봉고차 납치처럼 극단적인 경우만 인신매매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교묘히 유인해 성매매나 노동에 종사하게 하는 것도 인신매매의 한 종류이며 현재대부분의 인신매매는 이 같은 경우이다.

지난 9일(금) 국회도서관에서는 인신매매로 인해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춘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인신매매 방지와 성산업 규제를 위한 입법과제’를 주제로 양현아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주재하는 가운데 설동훈 교수(전북대 사회학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라미 변호사와 이나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가 발제자로 나섰다. 세미나는 유엔 인권정책센터 신혜수 상임대표, 법무부 여성아동정책팀장 박지영 검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민영 부연구위원 외에도 시민단체 관계자들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사진: 심수진 기자 jin19920806@snu.kr


1부에서는 성매매 종사와 관련된 한국의 인신매매 현황과 정책을 다룬 설동훈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설동훈 교수는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실태보고서에서 “한국은 인신매매의 근원지이자 경유지, 목적지이다”라는 대목을 인용하며 한국 인신매매 실태의 심각성을 제시했다. 이어서 그는 과거에 비해 국내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의 계층이 결혼이민자, 유학생, 탈북자 등 다양해졌고 해외 원정 성매매를 나가는 한국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현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 사회의 급변하는 상황이 성매매의 동기와 경로도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며 성매매 종사자 유입·유출국 간의 긴밀한 공조, 브로커와 업주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단속 등 다변화된 대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어서 인신매매 범죄의 처벌 강화를 위한 법적인 대응 방안이 발표됐다. 소라미 변호사는 “지나치게 엄격한 법 해석과 적용, 인신매매 범죄 구조에 대한 수사 기관의 무지 및 피해자에 대한 편견 등이 인신매매·성매매 법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의 국내 이행을 위해 올해 8월 발의돼 법사위에 계류 중인 형법 개정안 또한 피해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기존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이정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예로 들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확충하고 피해자가동의했더라도 인신매매에 의한 성매매의 성립을 명문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는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본 인신매매라는 주제로 이나영 교수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나영 교수는 인신매매를 바라보는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가 그녀들을 구매하고 그들로부터 이윤을 얻는지도 살펴봐야한다”며 “인신매매 대부분은 합법과 불법의 모호한 경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원인, 과정, 결과 모두를 고려해 인신매매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합법적으로 이주를 한 결혼이민자가 유혹으로 불법적인 성매매 여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인신매매에 의한 밀입국자가 합법적 체류자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나영 교수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야 실효성 있는 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미나는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정치권과 관련단체의 노력을 촉구하며 마무리 됐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반복돼 온 논의이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려면 입법부, 연구자, 시민단체 등을 포함한 다양한 주체의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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