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더 알고 싶은 백석을 위하여
여전히 더 알고 싶은 백석을 위하여
  • 대학신문
  • 승인 2012.11.1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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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서평] 『백석문학전집 1(시)』, 『백석문학전집 2(산문 기타)』

몇 년 전 백석에 관한 책을 내고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 머리말 첫 문장에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백석 시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적은 것이 화근이었다. 독자 몇이 백석 시를 모르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발끈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때쯤이면 대부분 백석에 대해서 알 것이라 생각해 내 딴에는 유머를 구사한 문장이었다. 다행히 기분이 상한 독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 일을 겪고 백석을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후로 또 시간이 흘렀다. 백석을 알리려는 노력들이 꾸준히 이어졌고, 그 결과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올해는 백석이 출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그의 문학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연이어 열렸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이번에 출간된 『백석문학전집』이다. 단아한 장정(裝幀)에 시와 산문을 망라해 두 권으로 펴낸 이번 전집은 백석 문학의 전체 지형을 조망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100주년에 값할 만한 성과라고 할 만하다.

백석의 문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소개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있었다. 1987년 이동순 교수가 『백석시전집』을 최초로 펴낸 것은 문학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 전집으로 인해 이른바 ‘월북문인’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백석의 문학이 당당하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학 연구자들과 시인들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백석의 문학은 문학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신선했고, 수많은 시인들이 밤을 새워 읽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비록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도 이루어지기 전에 만들어진 책이라 자료의 양도 부족하고 허술한 구석도 없지 않았지만, 이동순 교수의 『백석시전집』은 출간 자체만으로도 문학사에 기록될 만한 성과였다.

이동순 교수가 펴낸 전집의 의미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백석 시를 접하려는 이들에게 선뜻 권하지는 못했다. 그 전집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그 전집 발간 이후 그보다 나은 전집들이 다수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백석에 관한 책 말미에서 독자들에게 추천한 전집은 세 종류였다. 1순위로 추천한 것은 고형진 교수가 엮은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2007)이다. 이 전집은 부록에서 백석 시 표기의 원칙과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함으로써 최초로 ‘정본’을 표방했다. 정본과 함께 원본도 수록하고 있으며 시어 풀이도 상세하다. 작은 판형이라 휴대하기도 편해서 백석 시를 곁에 두고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해방 이전의 백석 문학, 그 중에서도 시만을 수록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나는 여전히 이 전집이 백석 시를 부담 없이 즐기기에는 최적의 도서라고 생각한다.

2순위로 추천한 것은 김재용 교수가 엮은 『백석 전집』(실천문학사, 2003)이다. 이 전집은 시, 소설, 평론, 동화시 등 당시까지 발굴된 백석 문학 전체를 포괄하고 있고, 시기적으로도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까지 모두 수록하고 있다. 그만큼 백석 문학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유익하지만, 현대식 표기로 바꿔놓은 것들이 많아 작품의 원래 느낌을 해치고 있다는 점이 흠이다. 마지막으로 추천한 것은 이숭원과 이지나 두 사람이 엮은 『원본 백석 시집』(깊은샘, 2006)이다. 이 전집은 백석 시가 발표되었던 당시의 지면을 스캔해 복원하고 그 아래에 주석을 붙였다. 그래서 작품 원본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장점이기는 하지만, 이런 형태의 책이 낯선 독자에게는 도리어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출간된 『백석문학전집』은 그간의 전집에서 조금씩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다. 앞으로 번역시와 번역소설을 수록한 세 권이 더 출간되면, 이 전집은 현재까지 백석이 남긴 것으로 판명된 모든 작품이 수록된 최초의 전집이 된다. 또한 이 전집은 오자, 탈자, 잘못된 띄어쓰기, 틀린 연갈이 등 기존 전집의 오류를 모두 바로잡았으며,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기존의 어느 전집보다 어휘 풀이에 공을 들였다는 점을 미덕으로 내세우고 있다. 표기와 띄어쓰기의 원칙으로는 원문의 형태를 최대한 존중하되, 오독의 우려가 있거나 명백한 오식이라고 판단된 경우만 수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예컨대 기존 전집에서는 ‘물끄러미’나 ‘물꾸러미’라고 표기했던 것을 이번 전집에서는 방언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원본 그대로 ‘물구럼이’라고 표기했다.

당당하게 ‘백석 텍스트의 진정한 정본’으로 자부할 만큼 백석 텍스트를 총망라해 철저한 고증과 꼼꼼한 교열을 거쳤다는 것이 엮은이들이 내세우는 이 책의 가치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과연 모든 연구자들이 이 전집을 ‘정본’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백석 시에는 낯선 방언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여전히 작품 전반의 해석뿐만 아니라 각각의 시어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전집은 종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작품의 맥락에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뜻을 제시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판단의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아 풀이가 적절한지는 앞으로도 논란이 될 것이다. ‘전집’을 넘어 ‘정본’을 표방한 이상, 고형진 교수의 『정본 백석 시집』이 그랬던 것처럼 어휘 풀이 및 표기의 판단 근거를 소상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개정판에서는 그와 관련된 부록을 첨가하는 것이 ‘정전’에 그나마 가까워지는 길이 될 것이다.

이 전집이 출간될 즈음, 백석 연구자 중의 한 사람인 이명찬 교수는 논문을 통해 “백석의 경우라면 단일 해석에 기초한 원본도, 정본도, 전집도 성급히 만들려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기본적인 어휘 풀이조차 제각각인 상황에서 하나의 해석만을 제시하는 전집이나 정본을 펴내는 것은 오히려 연구자들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고 독자들에게도 유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집은 ‘진정한 정본’보다는 현재까지 밝혀진 백석 문학의 전모가 수록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전집’ 쯤으로 평가하는 것이 좋겠다. 백석 문학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발품은 조금 줄어들 것이다. 일반 독자를 위한 추천 리스트에는 2순위쯤으로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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