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일이다. 강의 준비차 성인식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려고 포털 사이트에서 ‘성인식’을 쳤더니 첫 화면에 나온 것은 기대했던 전통사회의 성인식에 관한 자료가 아니라 박지윤이라는 여가수가 부른 ‘성인식’이라는 노래였다. 궁금하여 가사를 살펴보니 ‘소녀’가 ‘여자’로 태어나는 순간의 미묘한 심리와 욕망을 성적 모티브와 함께 묘사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어느 보수적 종교단체가 그 뮤직비디오의 내용이 청소년의 성윤리를 문란하게 한다고 하면서 지상파에서의 방영 금지를 요청했다는 글과 그에 대해 가수 측이 반박하는 글이 함께 실려 있었다. 양측의 논쟁이 그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후부터 통과의례에 관한 강의를 할 때마다 나는 이 사건을 예로 들곤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인식은 통과의례의 하나로서 사회의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이다. 아프리카의 오지인지 남태평양 어느 섬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부족에서 행해지는 성인식을 영상자료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오래 전이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성인식에 참여한 소년들의 등에 광범위하게 칼자국을 내고 그 부위를 다시 꿰매는 장면이다. 예리한 칼로 넓은 부위에 상처를 내었기 때문에 피가 흘러 넘쳤지만 사내아이들은 격심한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얼마 뒤에는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한 다음 땅으로 뛰어 내리게 하였는데 일종의 번지점프였다. 심지어는 독성이 있는 약초를 먹인 다음 토하게 하는 방식으로 독초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장면도 있었다. 이러한 고통의 부과는 부족의 성인들에게 요구되는 담력과 용기를 키우기 위한 의식의 일환이었다.

육체적 극기 훈련이 성인식의 전부는 아니었다. 소년들은 일정 기간 합숙훈련에 들어가서 부족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과 지혜를 습득해야 했다. 자신들의 조상은 누구이며 그 부족은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 부족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되는 행동은 무엇인지를 배워야 했다. 이는 부족의 전통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서 여기서는 신화가 핵심적 역할을 하는데 신화는 부족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신성하고 권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규모 부족사회에서는 성인식이 지금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면서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전통적 의미의 성인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달력을 보면 5월 셋째 월요일이 ‘성년의 날’로 지정되어 있고 이 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기념행사가 열리기는 한다. 그러나 관에서 주도하는 이러한 행사들은 매우 형식적으로 치러지고 있기 때문에 성년을 맞이하는 젊은이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성년의 날이 지정되어 있는 것조차 모르는 어른과 젊은이가 태반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사회의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성인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공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성인식이 별다른 호소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문화의 장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성인식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윤의 뮤직비디오 ‘성인식’은 하나의 예인 셈이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어른의 탄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적 모티브는 잘 나타나고 있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하다. 앞서 살펴본 부족사회의 성인식에서 잘 드러나듯이 성인식의 핵심은 시련과 고난 극복의 모티브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자아는 죽고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 탯줄 끊기’를 감행해야 한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모험의 과정에서 괴물을 퇴치하고 부족사회의 소년들이 성인식을 통해 용기와 지혜의 삶을 획득하듯, 우리시대의 아이들은 과거의 우상을 타파하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성인식의 모티브를 담은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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