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휴게소

정안휴게소
박시현

지난한 시간이었다. 설 연휴에 때마침 폭설이 내린 탓에 고속도로의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디게 굴러갔다. 마침내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진입한 것은 서울에서 출발한지 3시간이나 지나서였다. 15분 동안 정차하겠습니다, 하는 버스기사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여자는 벌떡 일어나서는 버스를 뛰쳐나가 화장실로 곧장 뛰어갔다. 3시간 동안 죽창 앉아있었기 때문에 여자는 몸이 무거웠고, 허리가 쑤셨다, 그리고 또-. 화장실로 들어간 여자는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변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참동안 여자는 구역질을 했다. 얼마 먹지도 않았었는데, 여자는 변기 속을 떠다니는 토사물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버스가 출발한지 3시간이나 지났지만 언제쯤 목적지에 도착할는지 도대체 가망이 없어보였다. 여자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또 그렇게, 앉아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는 새삼스레 피곤함을 느꼈다. 여자는 흩어진 머리를 추스르고 휴지로 입을 닦고서는 화장실을 나왔다.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밖은 어느새 한밤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여자는 물기 묻은 손을 코트에 문질러 닦고서는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눈발 때문에 여자는 눈을 뜰 수가 없었고, 발이 시려웠다. 구두를 신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스타킹 사이로 추위가 스며왔다. 주위는 온통 어두운 밤이었다. 오로지 휴게소만이, 그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모양이 마치 별, 같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가 뿜어낸 입김이 하늘로 올라갔다.


여자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휴게소 어디서나 사람이 많았다, 정말 많았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어디론가를 향해서 간다니, 여자는 새삼 그러한 사실이 경이로웠다. 대개가 가족들이었고,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식탁에 앉아 우동을 먹었다. 아빠가 우동을 쟁반 위에 담아 가져오면 엄마가 딸의 입에 우동을 물려주고, 아들은 물컵에 물을 따라 담아왔다. 오랜 여정으로 그들의 얼굴은 고단했지만 한편으로는 흡사, 물가에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 철새처럼 순한 눈빛을 띠었다. 그들은 모두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딘가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나, 따뜻한 얼굴을 하고 있나, 여자는 생각했다. 아까 화장실에서 죄다 비워내버린 탓인지 여자는 허기를 느꼈다. 여자는 우동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우동을 먹기에 줄은 너무나 길었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여자는 식당을 나왔다.


문 앞에 서서, 여자는 얼마 동안을 망설이며 서 있는다. 눈은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기묘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딱, 재작년 이맘때쯤에도 이처럼 눈이 많이 내렸었다. 여자에게 아직도 그날은 생생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날은 여자가 집을 나온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 사내가 식당문을 열어제끼고서는 왜 입구를 가로막고 섰느냐고 여자를 책망한다. 여자는 황망히 자리를 비킨다.


그날도, 눈이 내렸었다.


여자는 집을 나온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실은 이제 와서 이유는 무엇이라도 상관없었다. 다만 그때 여자는 너무 어렸고, 모든 것이 진득했고, 그래서 염증을 느꼈다. 여자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지금 이곳 아닌 어딘가라면 어디로든, 어디라도, 여자는 떠날 수 있었다. 그래서 집을 나왔다. 그날도, 눈이 내렸었다. 집을 나온 여자는 외로웠다, 외로웠다. 갈 곳이 없었고, 못 견디게 추웠고, 무엇보다도 외로워서, 그만 외로워서 어디로 가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긋지긋한 집만 아니라면-. 그때 남자를 만났다. 그때 남자를 만난 것은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그때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여자는 생각해본다. 여자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은 무척이나 따듯했다.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윽고 여자는 남자와 살을 섞는 사이가 되었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안아주는 것이 좋았다. 남자와 배를 맞대고 있을 때만 여자는 외롭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다정했고, 남자의 몸은 따듯했다. 그 즈음에 여자는 이미 자신의 생이 그동안 꿈꾸었던 방향과는 너무나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남자의 집에서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단지, 남자의 온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이 따듯했던 그 남자는 두 달 전 여자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별을 고할 때의 남자는 자비가 없었다. 돈을 건네주며, 남자는 악수를 하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잡았던 남자의 손은 너무 따듯해서 그 손을 놓았을 때 여자는 그만 눈물을 쏟을 뻔했다. 여자는 또다시 외로워졌다. 남자의 집을 나온 뒤로, 살아가기 위해, 여자는 매일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숨이 찼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숨찬 일이었는지, 여자는 몰랐었다. 남자와 헤어진 이후로 여자는 매일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같이 더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여자는 숨이 차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그보다 여자는 외롭고, 외로워서, 무엇보다도 외로워서-, 어느날 결국에는 집에 전화를 걸고 말았다. 그렇게나 떠나고 싶었는데 이제는 이렇게나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 돌아가도, 돼?, 여자는 물었다. 그 외에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돌아오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 말에 여자는 용감히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 여자는 돌아가는 중이었다.


여자는 단 한 번도 이렇게나, 간절히,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어쩌면 돌아가는 중인데도 이다지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할까.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여자는 손으로 눈자위를 가만가만 누른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가는 공중전화박스로 들어가 검지로 버튼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어, 엄마-. 나야, 유경이-.
……
눈이-많이 내리고 있어-.
……
……
미안해.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나, 갈 수가 없게, 되었어.
미안, 미안해-.”

여자는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여자는 주저앉는다.
여자는 공중전화박스에 쭈그려 앉은 채 소리를 죽여 울었다. 여자는 단 한번도 이렇게나, 간절히,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하지만,


이렇게, 배가 불러서는, 엄마를 볼 수 없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엄마, 나는, 사실, 뱃속에 아기가 있어, 그래도, 나는, 돌아갈 수 있어…? 하고 엄마에게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다, 여자는. 하지만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최후의, 최후의 순간인 지금, 최후의 지점인 이곳에 이르러서도, 여자는 여전히 말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자는 돌아갈 수 없다. 이렇게나, 간절히, 돌아가고 싶다고, 온 마음으로 원하고 있는데 어째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어째서? 여기, 이곳에서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있는데-.


그때, 여자가 타고 온 버스가 시동을 걸었다. 버스는 전조등을 켜고, 쌓인 눈을 밀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자는 주저앉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버스가 떠난다, 떠난다, 떠났다. 버스는 한 점 빛이 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버스가 떠나고 나서야 여자는 버스 의자 아래에 선물을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에게 주려고 얼마 남지 않은 돈을 털어 샀던 고급 속옷 세트. 브래지어와 팬티를 사면서 여자는, 엄마의 얼굴을 마주보고 선물을 건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려나 이제는 소용이 없다.

그렇게 많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어느새 주차장에 남아 있는 차는 얼마 남지 않고, 사람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그렇게 시끌시끌하더니 어느새 똑-하니 조용해져버렸다.

저 멀리서, 저마다 꼬리에 빛을 단 차들이 어둠속에서 느리게 흘러간다. 무슨 이름이더라,

제 고향으로 돌아간다던-여자는 흘러가는 빛들이 물살을 헤치고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같다고 생각했다. 눈이 계속 내린다. 눈은 내리고 내려서 이제는 떠나버린 차들의 바퀴자국을 덮는다. 고요하다. 사방이 온통 백지처럼 하얗다.

백지,

백지처럼 하얘질 수 있다면, 티끌 없는 순백이 될 수 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 막 땅에 내려앉는 눈송이처럼,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


여자는 자신 뱃속의 어둠과, 고요와, 그 위에 내려앉는 눈송이 하나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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