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정자동의 카페거리, 줄 지은 가로수 아래 상점의 앞으로 살짝 내민 테라스. 그 테라스에 조금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차를 마시며 얘기하는 사람들.

풍경 둘. 시골마을 골목 한 쪽. 돌담이 둘러쳐진 어느 집 대문 앞 골목에 앉아 따스한 늦가을 햇볕을 쬐며 얘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나는 경상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만 했지 그곳에서 생활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부모님과 함께 고향을 방문했을 때 약간의 추억과 도시와는 많이 다른 풍경이 뇌리에 남아 있을 뿐 집이나 고향이라는 인식을 갖지는 못합니다. 전공이 조경인지라 그 경관과 공간구조 등이 여느 농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설계를 업으로 삼으며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늘 저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 일만 20년이 넘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아직도 못 내리고 있는 저의 모습에 스스로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마을이 궁금해 졌습니다. 마침 전통과 관련된 글도 써야하는 상황이어서 아버지를 재촉해 고향마을로 내려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로부터 고향마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 내 나이가 몇인데 이제야 아버지와 고향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니.) 물론 아버지가 해주신 마을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정작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마을에 대한 아버지의 엄청난 애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70년대 우리나라를 열광시킨 도시에서의 새 삶을 찾아 과감히 마을을 버리고 가족을 데리고 나선 열혈 청년이셨고 숫한 어려움을 견뎌내고 지금의 안정된 가족을 일구신 분입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고향마을과 그곳에서의 삶이 이토록 강한 애정의 대상일지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찾은 고향마을에서 그동안 보고 들은 전통 공간에 관련된 여러 이론과 지식을 동원해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글 앞에 든 ‘풍경 둘’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계신 가까운 친척들입니다. 그분들은 저희와 인사를 나누고는 이내 골목 돌담 앞에 다시 앉아 무슨 얘기를 아주 재미있게 나누셨습니다. 그 순간 제 눈에 아주 신기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앉아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그 뒤에 있던 돌담과 골목, 돌담 안의 오래된 집, 마을 뒷동산의 소나무들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심지어 세 분의 모습과 말투 웃음 짓는 눈매까지도 서로 닮아 있었습니다. 사람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풍경이, 공간이 서로를 닮아 하나로 느껴지는 경험은 제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풍경에서 나는 전혀 동화되지 못한 구경꾼이고 아버지조차 이방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간을 연구하고 만들어 내는 일을 해온 저에게 공간은 객체였습니다. 늘 한 발짝 떨어져 봐야했고 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해하려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어떠해야 멋질 것인가만 생각한 듯합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 혹은 살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한 흉내 내기였을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풍경 하나’가 너무나 좋아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풍경이 좋긴 합니다만 이젠 ‘풍경 둘’이 너무나 간절합니다. 나의 ‘좋은 공간’은 이제 좀 더 분명한 방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들고 싶은 좋은 공간이 지녀야하는 진정성이 무엇이어야 하는 지 그 귀퉁이를 살짝 본 느낌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진심, 진실,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경험을 가져본 적 있습니까? 그런 경험을 추구해본 적 있나요?

새로운 한해를 앞두고 한번 생각해 봄 직 하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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