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인 듯한 ‘대중의 선택
때로는 ‘박식한 개인’보다 옳아
독선적인 의사결정 대신
대중의 지혜 믿어보면 어떨까

이문원 편집장
1907년 영국의 우생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시장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소의 무게를 알아맞히는 대회를 목격했다. 일반인 관중들에게 추정치를 적어내도록 하고 가장 근접한 답을 제시한 이에게 상금을 주는 대회였다. 대회에 참여한 800여 명은 직업과 지식수준이 천차만별이었고 소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이 써낸 추정치의 평균값이 궁금했던 골턴은 진행자에게 티켓을 넘겨받아 계산해 보았다. 추정치 평균값이 실제 무게와 크게 다를 것을 확신하면서.

결과는 놀라웠다. 추정치 평균값은 1197파운드로, 실제 측정값인 1198파운드와 거의 유사했던 것이다. 이 평균값은 참가자들이 꼽은 최빈값보다 정확했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어느 개인이 제시한 값보다도 실제와 가까웠다. 구성원 대부분이 특별히 박식하거나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집단은 놀랄 만큼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당초 대중의 무지를 증명하고자 했던 골턴은 “게임의 결과를 보면 민주주의의 선거도 생각했던 것보다 신뢰할 구석이 있다”고 말을 바꿔야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언론의 자유를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강조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그에 따르면 어떤 의견이 옳든 그르든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유통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언제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으나 동시에 인간은 토론과 경험을 통해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의견이 자유롭게 유통될 때 사회는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얻고 전체적으로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집단 지성의 힘’이나 ‘대중의 지혜’는 밀에게 당연한 결론이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인선이 마무리된 새 정부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말이 많다.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할 청와대 비서관의 면면을 언론에 제대로 발표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것이다. 이미 장관 등 요직 인사에 있어 소수의 측근 참모에 의존하고 보안을 최우선시해 ‘밀봉·나홀로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던 참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것’을 우려했는지 아니면 국민이 대통령의 깊은 뜻을 몰라줄까 걱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무엇이든 일단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을 보면 ‘대중의 지혜’를 믿는 스타일은 아닌 모양이다.

이번엔 우리 학교로 눈을 돌려보자. 법인화 이후 서울대 교육의 청사진을 그릴 미래교육위원회의 발표회가 지난 27일 있었지만, 발표회장의 분위기는 애초에 표방했던 다양한 의견 수렴과는 거리가 있었다. 학생이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토론자로 참여했던 교수들도 미래위 분과 소속 자문위원이 대다수였다. 아직 최종 보고서 발간을 남겨두고 있다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모으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갓 우(牛)시장에서조차 다양한 의견이 나름의 가치가 있을진대, 새 정부의 진로를 좌우하고 고등교육의 미래를 구체화하는 중요한 과정이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닐까. 때로는, 좌충우돌 어리석은 듯 보이는 대중의 의견이 모여 소수의 전문가나 측근에 의한 결정보다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지는 않을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을 쓴소리에 귀를 닫는 손쉬운 핑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러 목소리를 위한 통로를 열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장려할 필요는 없을까.

우매한 대중이 가장 똑똑한 전문가보다 나았다는 우(牛)시장의 교훈을 떠올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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