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교류의 첫걸음

▲ © 주우연 기자

‘이공계 기피현상’과 ‘인문학의 위기’.

 

모두 학문의 위기를 의미하지만 그동안 국가 경쟁력과 관련해 이공계 기피현상만 강조된 측면이 있다. 이에 지난 11일(화) 서울대 인문대와 연세대 문과대가 공동으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인문학 전반에 걸친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그 시작으로 21일 「인문학과 감수성」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연세대에서 열었다.

 

 

인문대 이태수 학장(철학과)은 「인문학의 자리보편과 개별의 사이」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인문학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보편의 가치를 추구한다”며  “보편적 법칙을 거부하는 개별을 무시하는 과학과는 달리 인문학은 개별적인 것을 버리지 않고 보편적인 적용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어 이 교수는 “개별적인 것의 특수성을 감지하는 안테나 같은 것이 감수성”이라고 인문학과 감수성의 관계를 설명했다.

 

 

 

 

보편에 어긋나는 개별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인문학’

 

 

 

 

이어진 각 주제 발표에서는 동서양의 다양한 인문학에 나타난 감수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약속된 관계사회계약과 근대적 감성」을 발표한 민은경 교수(영어영문과)는 “18세기 소설인 인츠볼드의 『쉬운 이야기』는 계약결혼이라는 주제를 통해 계약과 약속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강제에 의한 사회 계약론과 달리 감성을 통해 약속이라는 도덕적 동의가 가능하다”며 “이 점에서 근대적 감성이론은 사회 계약론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 김진영 교수(연세대ㆍ노어노문학과)는 「서고의 현상에서 자연의 현상으로」에서 푸쉬킨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시골귀족의 서재를 소재로 발표했다. “19세기 남성의 서재는 학자가 아닌 댄디(멋쟁이 신사)의 공간으로서 치장의 분장실이었다”고 지적한 그는 “진정한 철학자로서 작업 공간은 인공의 분장실이 아닌 자연의 골방이며 푸쉬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 오네긴이 시골 서재를 매개로 댄디에서 골수 낭만주의자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사교계에서의 자기 과시를 준비하는  타락한 도시의 서재에서 철학적 혹은 문학적 사유와 진리탐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푸쉬킨은 작품 속의 자연에서 자유와 진실을 재현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인츠볼드의 『쉬운 이야기』, 감수성을 통해 도덕적 동의 설명


 

한편 박낙규 교수(미학과)는 「어느 문사의 삶과 마음과 글씨왕희지의 경우」에서 문학이 아닌 개인의 삶에서 감수성의 의미를 찾았다. 박 교수는 중국의 중세 초기 감수성으로 바라본 세계를 글씨로 조형화한 왕희지의 삶과 내면세계, 글씨의 의미를 살폈다. 그는 “왕희지는 청․장년기에 관인으로서 유가의 질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만년에는 은둔하여 전원생활을 했고 선약을 복용하는 등 도교에도 심취했다”며 “그에게 있어 글씨는 삶의 표현이자 사상의 조형이었다”고 말했다. 또 “중국 감수성의 양태에서 효를 강조한 공자의 감수성은 효감(孝感), 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가자고 한 노자와 장자의 것이 도감(道感)이라면 왕희지는 타고난 감수성으로 바라본 세계를 글씨로 표현했기에 정감(情感)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포럼에 대해 전반부 사회를 맡았던 최문규 교수(연세대ㆍ독어독문학과)는 “인문학 분야에 대한 다양한 발표를 접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으며 윤원철 교수(종교학과)는 “정기적인 소모임을 꾸준히 하고 1년에 2차례 정도 심포지엄을 번갈아가며 개최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문학과 감수성」 이라는 큰 주제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다뤄져 다소 추상적인 논의에 그쳤던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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