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특강]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 교수

국내에서 인문서로는 드물게 5만부 이상 팔린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독일 베를린예술대)의 강연이 지난 19일(화) 교수학습개발센터(61동)에서 열렸다. 그는 고려대 금속공학과 재학 시절 충동적으로 독일로 떠나 철학과 미디어이론 등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신작 『시간의 향기』 이외에도 국내에서 번역이 아직 안된 『죽음과 타자성』, 『투명사회』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번 강연은 김태환 교수(독어독문학과)가 사회를 맡았으며 신간 『시간의 향기』와 국내에서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피로사회』의 내용을 저자가 설명해주는 식으로 강의가 이뤄졌다. 한국말이 서툰 저자를 위해 사회자 김태환 교수는 중간중간 어색한 표현을 교정해주며 저자의 강의에 도움을 줬다.
 

사진: 심수진 기자 jin08061992@snu.kr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인문학에서 사회 비판의식을 발견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회에 항상 비판의 칼을 겨누어야 하는 ‘쓴’ 인문학이 실종되고 소비하기 좋은 ‘달콤한’ 인문학이 대두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힐링’ 열풍에 인문학자들이 가세하면서 대학 안쪽에는 경직된 인문학, 학교 바깥에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 인문학만이 남았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푸코가 말하는 ‘규율사회’의 ‘너는 해서는 안 된다’ 혹은 ‘너는 해야 한다’는 금지와 강제의 화법 대신 새로이 대두한 ‘성과사회’의 ‘너는 할 수 있다’는 화법에 기인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시적인 지배 구조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유라는 미명의 자본 명령이 자리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담론이 고통, 상처와 연결되는 부정성의 담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의지의 주인이면서도 그 의지를 스스로 노예화하는 데 사용하고 그러면서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유연한 인간상을 재생산한다.

이러한 대전제 아래서 그는 긍정성의 담론이 사회를 장악하면서 타자가 보이지 않게 된 세태를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논했다. ‘할 수 있다’는 자아의 명령은 다른 개체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한정시켜 바라보게끔 하는데 이러한 시선은 사랑의 상대를 소비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섹시’란 형용사가 자본의 전략이 된 이 시대에 섹슈얼리티는 한낱 성과가 돼버렸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동성애가 관습처럼 여겨지던 고대 그리스에 소크라테스를 지극히 사랑한 철학자들은 그를 ‘어디에도 없는 자’로 불렀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의 대상을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시공간에 위치시키며 자신의 것이 아닌 타자 그 자체로서 사랑한 이들이 진정한 에로스에 가까웠다고 주장했다. 성과사회에 이르러 사랑이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고통이라는 부정성의 체험마저도 거부되면서 개인들은 자아에 침잠하게 되는데, 그는 이러한 현상을 ‘우울증’으로 진단했다.

다음으로 그가 논의한 것은 오늘날 주된 미디어로 떠오른 ‘디지털 매체의 폭력성’이다. 저자는 디지털 매체가 사회 중심부에 위치하는 정보사회에 대해 구성원으로 하여금 스스로 정보를 “참새처럼 지저귀게”하며 “‘총(總) 기록사회’가 된다”고 지적한다. 지배 대상이 스스로 지배를 용인케 함으로써 기록을 받아 적는 권력이 그 어느 때보다 지배 대상을 잘 통제할 수 있는 ‘투명사회’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투명사회는 벤담이 말한 원형감옥의 변용인 ‘디지털 판옵티콘’이란 개념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디지털 판옵티콘’은 자유로운 정보의 교환은 일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정보의 장은 자발적으로 권력에 의해 일거수일투족 기록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긍정적 가치로 여겨지던 투명성이란 속성이 역으로 지배의 기제로 사용되는 것이다.

 

사진: 김은정 기자 jung92814@snu.kr


마지막으로 저자는 모든 시간이 노동의 시간으로 환원되는 성과주의의 시간성을 비판했다. “휴가를 가도 노동시간을 설정해놓고, ‘힐링’도 노동시간 안에서 하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처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듣기 위해 『대학신문』에서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서 저자는 현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끌어들인 ‘구조’라는 개념으로 성과사회로부터의 탈주를 원천봉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논의 안에서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가능한지에 대해 저자는 “스스로를 착취하게끔 명령하는 자본주의의 교활함은 저항혁명을 결국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대답했다. 그에 따르면 자아에 침잠된 성과사회의 구성원들은 연대를 꿈꿀 수 없으며 반항의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또 그는 『피로사회』 맨 마지막 부분에 제시된 ‘우리-사회’의 구체적인 의미를 묻는 질문에 “어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려 한 것은 아니고 종교적 암시로 책을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이라 대답했다. 고통을 스스로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분석으로 국내에서 붐을 일으킨 『피로사회』. 그러나 저자가 이 사회로부터 탈주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 몫은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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