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의 어깨 위에서 물리학의 미래를 보다
‘힉스’의 어깨 위에서 물리학의 미래를 보다
  • 허정준 기자
  • 승인 2013.03.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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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힉스 입자를 돌아보다

지난 14일 CERN(유럽공동원자핵연구소)은 힉스 입자 발견이 확실시 된다고 발표했다. 힉스 입자는 ‘신의 입자’로 불리며 과학자들은 물론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힉스 입자는 무엇 때문에 그런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것일까. 힉스 입자에 대해 알아보자.

50년을 뛰어넘은 인간의 예측을 확인하다

질량은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매일 체중계에서 체중을 재고 야채나 고기를 살 때도 질량을 측정한다. 하지만 체중을 재는 사람도 야채나 고기를 사는 사람도 질량이 왜 생기는가하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1960년대 많은 입자 물리학자들은 ‘질량이 어디서 비롯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964년 힉스를 비롯한 6명의 입자물리학자들(피터 힉스, 로베르 브라우, 프랑수아 엥글레르, 헤랄드 구랄니크, C. R. 하겐, 톰 키블)은 이 질문에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힉스 메커니즘’은 우주에 고르게 퍼져있는 ‘힉스 장(Higgs field)’과 입자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입자가 질량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끈적이는 유체가 가득찬 방에서 입자가 운동할 때 끈적이는 유체에 의해 입자가 느려지는데 그때 질량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힉스 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 입자일수록 질량이 크고 적게 상호작용하는 입자일수록 질량이 작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힉스 입자(Higgs boson)는 무엇일까. 힉스 입자는 힉스 장을 존재하게 하는 입자다. 따라서 CERN의 힉스 입자 발견은 힉스 메커니즘이 실제로 존재함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1964년 힉스 메커니즘이 등장한 이후로 입자물리학자들은 힉스 메커니즘을 확인하기 위해 힉스 입자의 존재를 찾아 왔다. 힉스 입자를 포함한 17개의 입자로 세상을 설명하는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의 나머지 16개 입자는 지난 50년 동안 모두 발견됐다. 하지만 마지막 입자인 힉스 입자만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힉스 입자는 입자가속기에서 만들어지고 10^(-22)초 만에 붕괴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학자들은 힉스 입자가 붕괴한 흔적을 통해 힉스 입자를 역추적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힉스 입자가 붕괴하는 5가지 방법 중 관찰이 용이한 2가지 방법에 집중하여 역추적해 붕괴하기 전의 힉스 입자를 찾을 수 있었다.

삽화1. 입자충돌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돌 이미지
충돌기 내부에서는 초당 수 천만번의 충돌이 일어난다. 충돌 이후 붕괴된 입자들의 흔적을 통해 붕괴되기 전의 입자에 대해 조사한다.

인류가 자연을 이해하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힉스 입자는 실생활에서도 사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강영 교수(경상대 물리교육과)는 “현재로서는 없다”고 답한다. 다만 “19세기에 전자를 발견했을 당시에도 전자가 인류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며 “지금 힉스 입자의 이용 가능성을 단정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물리학자로서 이번 힉스 입자 발견을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인간이 극히 추상적인 수학적 이론을 세웠는데 그 이론이 경이로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 표현하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힉스 입자 세번이나 발견되다?

힉스 입자 발견에 관련된 발표는 2011년부터 세번에 걸쳐 있었다. 가장 먼저 2011년 12월 13일 CERN은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뒤이어 2012년 7월 4일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소립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2013년 3월 14일 “새로 발견된 입자가 힉스 입자일 가능성이 99.6%”라고 발표했다. 각각의 발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힉스 입자가 세번 발견된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CERN 발표의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자.


힉스 입자의 발견은 LHC(Large Hadron Collider, 대형강입자충돌기)에서 이뤄졌다. LHC 안에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양성자들의 충돌이 초당 수천만번씩 일어난다. 무수히 많이 일어나는 충돌들 속에서 물리학자들은 힉스와 관련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호를 찾는다. 이를 리사 랜들 교수(하버드대 물리학과)는 “수만명의 관중이 있는 축구 경기장에서 목소리를 듣고 친구를 찾는 것”이라 비유한다. 그런데 문제는 관찰 과정에서 배경 소음을 특별한 신호로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2월의 발표와 2012년 7월의 발표는 바로 이 데이터의 정확도에서 차이가 있다. 2011년 발표 당시 데이터는 3시그마(σ, 표준 편차를 나타내는 기호) 수준이었다. 이는 잘못 판단했을 확률이 3백분의 1보다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3시그마도 일상생활에서는 믿을 만한 데이터를 의미하나 과학자들에게 3시그마 수준의 데이터는 그저 ‘힌트’에 불과하다. 과학자 사회는 ‘새로운 입자의 발견’을 확인하는 데 최소 5시그마 수준(약 170만분의 1의 확률)의 데이터를 요구한다. 2012년 7월 데이터는 이 기준을 충족했고 CERN은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소립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한다.


이번 3월의 발표는 앞 문장의 ‘추정’을 뗄 수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새로운 소립자’를 발견한 이후 물리학자들의 일은 그 소립자가 표준 모형의 ‘힉스 입자’인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2012년 발견한 입자는 힉스 입자로 ‘추정’되지만 아직 어떤 입자인지 모르는 미지의 입자였다. 표준 모형의 힉스 입자가 가지는 성질들과 미지의 입자가 갖고 있는 성질들을 비교한 결과가 3월 중순에 있었던 “힉스 입자일 가능성 99.6%” 발표다. 하지만 아직 미지의 입자가 힉스 입자인지 확인이 끝난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아직 분석 중에 있으며 이번 7~8월에 공식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물리학계, 내일을 준비하다

아직 힉스 입자 발견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리학자들은 어떤 연구를 진행 중일까. 실제 CERN에서 충돌 데이터를 분석하는 ATLAS(A Toroidal LHC ApparatuS)팀에 참여 중인 양운기 교수(물리천문학부)의 설명을 들어봤다. 양 교수에 따르면 CERN에서 우선적으로 진행 중인 연구는 표준 모형의 힉스 입자와 미지의 입자의 성질을 비교하는 것이다. 힉스 입자의 성질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는 힉스 장과 기본 입자와의 상호작용 정도가 클수록 기본 입자의 질량이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힉스 장과 기본 입자와의 상호 작용 정도를 측정해 실제 기본 입자의 질량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조사했다. 조사 결과 20~30% 정도의 오차를 가지며 비례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20~30%의 오차에 대해서 양 교수는 “실험 횟수가 증가하면서 더 비례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번째 성질은 표준 모형의 힉스 입자는 스핀(질량과 마찬가지로 입자 고유의 내재적 성질로 회전효과를 주는 물리량)이 0이라는 것이다. 스핀이 0이라는 것은 힉스 입자가 특정한 방향으로의 선호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힉스 장은 온 우주에 걸쳐 고르게 퍼져 있다. 순간적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입자의 스핀을 알기 위해 “미지의 입자의 붕괴로부터 나온 많은 입자들의 분포를 통해 입자의 스핀을 알 수 있다”고 양 교수는 설명한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견된 입자의 스핀은 0으로 보인다”고 양 교수는 덧붙였다.


힉스 입자 발견을 확인하기 위한 다른 접근도 있다. 앞서 밝혔듯 표준 모형의 힉스 입자는 5가지의 붕괴 형태를 갖는다. 이번 발견에서는 주로 입자가 광자로 붕괴하는 과정과 ‘Z 보손’으로 붕괴하는 경우를 관찰했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봐야 잘 이해할 수 있듯 입자 붕괴 과정도 다양하게 살펴봐야 입자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이번 발견에서 많이 이용하지 않은 나머지 3가지 과정(b쿼크 붕괴, W보존 붕괴, 타우 입자 붕괴)에 대해서도 관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3가지 채널을 관찰해 입자의 성질을 더 알아내는 연구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7~8월 중 힉스 입자 발견이 확인된다면 표준 모형의 17가지 기본 입자는 모두 찾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입자물리학은 모두 완성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양 교수는 “표준 모형은 자연계를 잘 설명하고 지금까지의 실험을 통해 발견된 오류가 없지만 표준 모형이 완벽한 이론은 아니다”고 말한다. 표준 모형은 중력을 설명하지 못하고 일반상대성 이론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표준 모형 이외에 많은 이론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이론은 ‘초대칭성(supersymmetry)’이다. 물리학자들은 현재 발견된 입자가 힉스 입자임을 확인하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지만 시야를 넓혀 표준 모형에서 벗어나는 데이터를 찾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양 교수는 “초대칭성 이론에 따르면 힉스 입자가 여러 종류일 수 있다”며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또다른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입자물리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몇몇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다. 지난 2008년 LHC 가동을 앞두고 스티븐 호킹 교수는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못한다는 것에 100달러를 걸어 주목을 받았다. 호킹 교수는 이번 발견에 대해 “물리학의 커다란 진전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실험 결과에서 나온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새로운 입자의 발견이라는 혁혁한 공을 세운 LHC는 지난해 말부터 작동을 멈추고 보완 공사에 들어갔다. 2년간의 공사를 거친 후 2012년의 2배의 에너지로 가동될 것이다. 양 교수는 “힉스 메커니즘을 증명하는 힉스 입자 발견과 기본 입자의 질량이 왜 특정 값을 갖게 되는지를 밝히기 위해 LHC가 만들어졌다”며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가동될 LHC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힉스 입자 발견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 양운기 교수는 오는 3일(수) 자연대(56동)에서 「The Mystery of Mass」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이 강연은 학부 1학년 수준에 맞춰 쉽게 진행될 예정이다. 비전공자가 혼자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내용인 만큼 힉스 입자 발견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양 교수의 강연은 학내구성원들의 힉스 입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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