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의 음악을 ‘소울 뮤직’이라고 하듯 ‘소울 푸드’는 원래 미국의 흑인들이 즐겨먹던 음식을 뜻하는 말이었다.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노예제 시대에 흑인들은 백인 농장주가 먹지 않던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백인이 버린 닭발, 목, 날개 같은 부위를 뼈째 씹어 먹을 수 있도록 오래 튀긴 데서 유래한 프라이드 치킨 역시 이들의 대표적인 소울 푸드였다. 이처럼 흑인들의 음식에 ‘소울’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이 음식들이 백인들로부터 핍박받던 흑인들의 허기진 ‘영혼’까지 달래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이 말이 사람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감싸주는 음식 전반을 일컫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단식 역시 ‘먹는다는 것’이 기계적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울 푸드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소울 푸드가 추구하는 것이 영혼의 풍요로움이듯, 단식 역시 뱃속의 풍요로움 대신 정신의 자유를 택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단식은 ‘자유보다 빵’을 내세웠던 1960년대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맞서는 투쟁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빵’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이 영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빵’을 포기하겠다는 의지가 단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단식투쟁을 하던 이들에게는 ‘빵’대신 선택한 ‘자유’야말로 일종의 ‘소울 푸드’였던 셈이다.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에서 주목한 소울 푸드는 ‘감자’였다. 영화 제목인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감독은 감자가 전세계인의 소울 푸드라는 점에서 이를 제목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감자는 4·3사건 당시 무자비한 폭력과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등장한다. 군인에게 살해당한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감자는 학살을 피해 굴에 피신한 이들에게 건네짐으로써 산 자들의 허기를 다스려준다. 죽은 자의 영혼이 담긴 음식을 함께 나누어먹음으로써 산 자들은 영혼의 허기까지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죄없는 주민들을 학살하기를 거부한 군인은 누군가를 죽일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 상사의 명령을 순순히 따름으로써 영혼의 ‘자유’를 지킨다. 자신이 먹기 위해 그리하여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먹지 않음’을 선택함으로써 국가 폭력에 맞선 것이다.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하지만 65년이 지난 지금도 4·3사건 피해자들의 허기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듯하다.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열린 4·3사건 기념식에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4·3사건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겠다는 정부의 약속 역시 10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남기고 싶다며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종북 좌파’로 매도당하고 공권력을 위협하는 ‘범죄자’로 몰리며 300억이 넘는 과징금을 떠안고 있다. 체포·연행된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 수가 600명이 넘고 강정마을 주민의 31%가 자살충동을 겪고 있다고도 한다. 구럼비를 폭파하는 발파음이 들릴 때마다 4·3사건의 악몽을 떠올렸다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끝나지 않은 세월’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순항 중’이다. 언제쯤에야 강정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지슬’을 맛볼 수 있을까. 구럼비에도 소울 푸드가 필요하다. 

 

안지영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