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바꾸는 것만으로
정보의 본래 의미 왜곡 가능
인포그래픽의 중요도가 높아진 만큼
그래픽에도 비판적 시각 필요해

신선혜 사진부장
디자인만으로 왜곡이 가능할까. 요새 교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포터즈」 선본의 홍보 포스터엔 ‘더 가깝게’라는 단어가 제일 위에 쓰여 있다. 바로 그 오른쪽 밑엔 ‘더 대표답게’라는 문구가 보인다. 순서만 다른 이 글자들을 만약 위치만 바꿔 적으면 어떨까. 그래도 사람들은 똑같은 정보라고 느낄까.

실제로 43대 미국 대선 때 플로리다 주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W. 부시의 승리가 확정되자마자 각지의 사람들로부터 항의가 몰려왔던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새로 도입된 ‘나비형 투표지’에서 시작됐다. 투표지엔 후보의 이름이 양쪽으로 나뉘어 적혀있었고 그 가운데에 투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렇다보니 2번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려면 세 번째 칸에 체크를 해야하는 디자인이 된 것이다. 이렇듯 디자인으로 인해 원래와는 다른 정보가 전달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현대엔 정보의 양이 급속도로 많아져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이 꼭 필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인포그래픽(information graphic)’이 탄생한다. 인포그래픽이란 지도, 다이어그램, 그래프,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활용해 무분별한 정보를 빠르고 쉽게 전달하려고 만든 시각물을 통칭하는 용어다. 즉 정보를 시각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여기엔 한 가지 룰이 존재하는데 정확한 실제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디자인된 정보를 받아들일 때 아무런 비판의 과정 없이 당연하게 마주한다.

하지만 인포그래픽 자체는 객관적이지 않다. 데이터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의도’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점은 저널리즘과 만났을 때 더욱 증폭된다. 정답이 없는 사회적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왜곡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 가을 모 신문엔 대선에 관한 인포그래픽이 실렸다. 각 후보의 출마 연설 및 선언문에 나타난 단어들을 빈도수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해 그래픽으로 만들어 놨다. 박근혜 후보의 가장 큰 단어는 ‘국민’이다. ‘국민’ 옆에는 ‘존경’이 작게 써져있다. 반면 안철수 후보의 가장 큰 단어도 역시 ‘국민’이지만 그 옆엔 ‘분열’이 적혀있다. ‘존경’과 ‘분열’ 모두 실제로는 핵심적이지 않은 단어지만, 단어의 배치만으로 각각이 중요해 보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편집자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 예시를 ‘읽은’ 사람이라면 왜곡의 여지가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똑같은 상황을 그래픽으로 접했다면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해석하듯 크기에 따른 단어의 중요도만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픽화 된 정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상한 권위를 가지게 됐다. 특히나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무의식적 사고 체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더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다.

넘쳐나는 정보들 사이에서 그것을 알기 쉽게 디자인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텍스트를 접할 때만큼 그래픽에 대한 비판적인 읽기 훈련이 돼있지 않다. 특히나 지금은 기성언론에서 ‘인포그래픽’ 도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SNS를 통해 긴 기사보다 그래픽 이미지 한 장이 더 빨리 퍼지는 상황이 형성됐다. 이렇게 중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는 그래픽의 왜곡 가능성을 확실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다간 당신의 무의식이 설득돼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원치 않는 행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겐 객관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라도 충분히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다. 디자인만으로도 왜곡될 수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