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자화상, 좀비
현대인의 자화상, 좀비
  • 최정윤 기자
  • 승인 2013.04.14 0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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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좀비물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매회 높은 시청률로 화제가 된 「워킹 데드」는 최근 유행하는 대표적 좀비물 중 하나로 높은 인기에 힘입어 한·미에 동시방영을 됐다. 지난 달 개봉한 「웜 바디스」 또한 좀비물은 흥행할 수 없다는 속설을 깨고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수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았다. 국내에서도 좀비는 문화콘텐츠로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최초의 좀비드라마 「나는 살아있다」는 색다른 시도를 감행해 호평받았으며 만화가 강풀은 「당신의 모든 순간」에서 호러만화가 아닌 순정만화 장르 안에서 좀비를 다루기도 했다. 비호감을 넘어서 불쾌감을 주는 좀비들이 이토록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에 따른 그들의 변천사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그들은 어디서 왔나=좀비는 부두교라는 애니미즘 민간신앙에서 유래했다. 부두교 좀비들은 사람을 공격하고 감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현재의 좀비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주술사의 약으로 인해 가사상태에서 영혼을 빼앗긴 후 자유를 박탈당한 채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이 주술은 아프리카에서 서인도제도로 팔려온 흑인들이 퍼뜨린 것으로 노예로서 흑인들의 존재를 재현한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심지어 죽음조차 맞지 못하는 이들을 조지 매디슨은 대중문화의 한복판으로 끌어온다. 그의 작품 「나는 전설이다」(1954)에서 묘사되는 바이러스 감염체들은 더이상 원한이나 귀신과 관련된 미신적인 존재가 아닌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캐릭터가 주는 현실감 넘치는 공포감은 많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에 영감을 받은 조지 로메로 감독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통해 전형적인 호러 캐릭터로서의 좀비를 정립한다. 좀비들은 초점이 흐릿한 눈에 느릿느릿하고 뻣뻣하게 움직이며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그들은 또한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시체’로 썩어가는 육신를 가지고 있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뇌를 파괴해야만 죽음에 이르게 된다.

◇워킹데드(walking dead)가 아닌 워킹데드(working dead)=떼로 몰려다니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며 감정을 느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는 좀비들의 속성은 자연스럽게 주체성 잃은 군중, 혹은 산업자본주의 속 노동자에 대한 비유로 사용됐다. 니체는 「프리드리히 니체 수상록」에서 신념없이 사는 인간을 두고 ‘살아있는 시체’라고 표현했으며 들뢰즈는 「천 개의 고원」에서 “좀비, 즉 살아있는 죽은 자라는 신화는 노동의 신화이지 결코 전쟁의 신화가 아니다”라고 했다. 국가는 노동의 효율성을 위해 노예화된 인간, 즉 좀비화된 인간을 원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소비자본주의로 넘어간 20세기 중반 이후 좀비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나타나 우리를 당혹케 한다. 「시체들의 새벽」(1978)에서 좀비들은 공장의 노동자가 아닌 쇼핑몰을 배회하는 소비자로 나타난다. 살아생전의 기억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찾은 좀비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끊임없이 ‘소비’하는 자신들의 자화상을 엿보게 된다. 소비하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끊임없는 순환 속에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돼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흐리멍덩한 눈동자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되던 좀비는 변화된 캐릭터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9·11 테러 이후 개봉한 「28일 후」에서 좀비는 더 이상 열등한 존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은 괴성을 지르고, 헤엄쳐 강을 건너며, 엄청난 속도로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한다. 심지어 「랜드 오브 데드」의 좀비들은 사고가 가능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감정을 느낀다. 좀비들과 인간 간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것이다.

◇세계의 끝을 이야기하다=좀비는 아무런 사고도 하지 못하는 노예적인 존재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해 감염시키는 괴물체까지 다양하게 재현돼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근 좀비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세상의 끝’이라는 설정이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등의 캐릭터는 단순한 ‘괴물’일 수 있으나 세계 종말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반면 좀비는 집단성과 증식성이라는 특징을 통해 세상의 종말과 연결된다. ‘전염병’과 밀접하게 연관돼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영화 「28일 후」에선 바이러스 창궐 이후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 텅빈 런던 거리를 비추며, 소설 「세계전쟁 Z」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대전으로 비유할 정도로 강력한 바이러스의 파괴성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파국의 지형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좀비를 현대인의 거울상이라고 지적했던 문강형준씨는 “테러, 핵전쟁, 자본주의 위기, 자연재해 등 여러 위기를 거치며 불안해진 세계인들에게 좀비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라며 “좀비는 만성적인 위기상태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안이 실체화된 산물”이라고 말해 좀비 서사가 지닌 묵시록적 특징을 강조했다.

좀비는 내·외부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색다른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특성이 뒤섞여 있고 인간과 비인간적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좀비의 이러한 모호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성찰하게 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무한경쟁사회에서 인간이 자행하는 짓은 서로를 물고 뜯고 죽이는 좀비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인간들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모습이 어느새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이다. 좀비영화를 보고 나온 당신은 영화관을 나서며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좀비에서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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