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5월의 상처
민주화의 역사와 가치가 갖는 함의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정진욱 부편집장

다시 5월이다. 신록의 계절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예나 지금이나 녹음방초(綠陰芳草)가 꽃보다 아름다운 시기다. 그렇지만 3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5월은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슬프고 억장이 무너지는 때다.

올해 5·18 기념일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기념곡을 만들겠다고 예산을 책정했고, 5·18 관련 단체와 시민들은 “5·18 정신의 훼손”이라며 반대했다. 서울보훈청장은 ‘5·18 기념 서울청소년대회’의 수상작을 교체해 물의를 일으켰고, 한 대학의 5·18 사진전은 고의적인 사진 훼손으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는 5·18의 북한 개입을 ‘특종’이라고 보도했고, 결국 18일 당일 광주에서는 관련 시민단체가 대거 불참한 상황에서 ‘반쪽짜리’ 기념식이 거행됐다. 제6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8년 국회가 폭동과 난동으로 불리던 5·18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정식 규정하고 1997년에는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음에도 여전히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며칠 전 한 아이돌 가수는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말로 많은 이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보수 성향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비추천’ 혹은 부정적인 의미를 총칭하는 단어로 오용하고 있는 ‘민주화’의 의미를 방송에서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10대들 사이에서는 이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말들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이 커뮤니티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희화화해 그 가치를 폄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이 지금까지 이룩해온 민주화와 이러한 과정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일부 네티즌들은 5·18 관련 희생자들을 수산시장의 홍어에 비유해 희생자들의 관 사진에 “홍어 말리는 사진”, “홍어들 포장완료”라는 폭언을 퍼붓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 지향과 견해가 다르다고 하기에는 반인륜적이며 역사를 거스르는 행동이다.
 
민주화 운동은 군부 독재와 압제에 맞서 헌법이 보장하는 주권을 회복하자는 정당한 주장이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켜냄으로써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근간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민주화’라는 말의 무게는 상당하다. 말실수로, 정치적 견해 차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무게와 함의를 가진 말인 것이다. 한국 현대사 곳곳에서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고 믿으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그들의 희생을 부정하고, 그들의 희생의 결과인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러한 왜곡된 시각과 표현에 여과 없이 노출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래서 이러한 행동들이 특정 사이트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이제라도 표현의 자유와 익명이라는 미명 하에서 이뤄지는 과격한 언행에 대한 자정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역사는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던 그들이 더 이상 5월의 ‘망(忘)령’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 역사 속에 살아 있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시린 그리움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애끊는 미안함으로, 누군가에게는 어렴풋한 고마움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으로. 산 자든 앞서 간 자든 더 이상 계절의 여왕인 5월에 상처 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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