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준 시간강사(건축학과)

시간강사에게는 가르치는 즐거움과 동시에 자유로움이 있다. 방문객으로서의 특권이 한 학기라는 꽤 긴 시간 동안 지속된다. 보수가 적다는 등의 실제적인 생활상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는 오히려 그 깊이를 모르는 피상적 견해라고까지 생각이 든다. 톰 소여의 페인트 칠 에피소드로 들릴지 모르지만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실제 페인트칠은 재미있지 않은가? 내가 강사 생활에서 가장 즐기는 것은, 이 또한 싱겁게 들릴지 모르지만, 커피 혹은 차 마시는 시간이다.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비교적 잘 가꾸어진 여러 대학들의 캠퍼스에서 명상 혹은 아예 무념의 공백을 즐긴다. 이제는 처음 학교를 방문하더라도 빠른 시간에 본능적으로 이런 공간을 찾을 수 있다.

영국인들은 ‘차’에 대한 독특한 문화 있다. 우리가 ‘밥’ 문화라면, 그들은 ‘차’ 문화다. 우리에게는 ‘식사하셨어요?’가 일상적 인사고, 대화를 하자는 뜻으로 ‘식사나 같이 합시다.’ 라고 하며, 때가 되면 ‘밥은 먹고 합시다.’ 라며 갑자기 하던 일을 중단한다. 영국 TV 광고에서 두 사람이 격렬한 논쟁을 하다가 ‘Cup of tea?’ 라는 한 사람의 제안에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 휴전 상태가 되며, 다 마신 후에 다시 논쟁을 시작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일터에는 거의 공식적으로 용인된 ‘티 타임’이 있으며, 찻잔을 쥐는 법 등의 격식 그리고 비스켓, 케이크 등 차를 위해 존재하는 다양한 부식들이 있다. 차 마시는 공간과 분위기는 당연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유명한 영국의 정원문화에 대한 관심을 차 문화와 관련 짓고자 한다면, 논쟁의 여부가 있겠지만, 충분히 공감의 여지가 있다. 10년 동안 영국에서의 생활은 나로 하여금 주말에 ‘어디서 차를 마실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블렌하임 같은 정원을 찾아 교외로 나가기도 하고, 아니면 메릴본 거리 같은 곳을 찾아가 도시의 보행자와 풍경을 즐기기도 한다.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주말 전체의 휴식의 질을 결정하고 아울러 한 주 전체의 기분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서울대학교 캠퍼스는 다른 대학들과 다르다. 정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관악산의 산자락이 학교를 감싸고 캠퍼스에 스며들어 실제 자연에 가까운 독특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다. 거기에 사계절이 더해져 실로 변화무쌍한 색들의 변화, 특히 꽃들의 개화 시기에는 학교 가는 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다. 학교의 주요시설들이 밀집한 곳은 이미 60년이라는 시간의 집적을 통해 도시의 거리가 갖는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나에게는 20년 전 기억이 있기에 과거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타 학교의 캠퍼스와 다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롤랑 바르트가 사진 풍경에 대한 거주자와 방문자의 입장을 비교하며 언급한 내용이 기억난다.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풍경은 “must be habitable, not visitable”('방문' 되는 것이 아니라 ̒거주̓ 되는 것이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방문객으로서의 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기억 속에서 나는 캠퍼스를 무수히 오고 갔으며, 즐거움, 새로움 또는 화려함을 찾는 방문객으로서의 경험 대신 이미 거주자로서의 자연과 도시 풍경 속에서의 상상 거주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것은 학기 중 어느 날씨 좋은 날 강의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서다.

방문객으로서가 아닌 거주자로서의 바램이 있다면, 경제적 원리-기업의 브랜드와 필요한 공간을 위한 개별 건물의 내적 요구-에 의해 캠퍼스의 남은 공간들이 정의되기보다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정착되어온 자연과 도시 풍경으로서의 캠퍼스가 침해되고 뒤틀리지 않는 그런 전통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왜냐하면 20년 뒤에도 거주자로서 차를 마시러 찾아올 수 있는 그런 모태적 공간이 지켜지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김현준 시간강사
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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