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호 강사(경제학부)

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해마다 한 두 차례는 폭우를 쏟아 붇던 태풍 한 번 찾아오지도 않고, 전력난으로 에어컨도 맘대로 틀지 못하여 더욱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갔네요.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하고, 낮에는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깊게 느껴지는 가을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재작년에 작고하신 아버님 유송께서는 아동문학가, 시인이셨고, ‘우리집’이라는 동시에서 “오두막 집이라도 환한 마음 꽃 내음 고운 노래 책 읽는 소리”가 가득한 “꿈이 크는 곳”을 노래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아버님처럼 신춘문예 당선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안타깝게 중학교 다닐 무렵, 문학가가 되기에는 너무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정서가 배어나는 글을 쓰지 못하고 어설픈 관념으로 가득한 글밖에 쓰지 못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미학을 전공할 생각을 하였는데, 무언가 알아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누구인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된 때문입니다. 대학에 가서 미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공부하면 최소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나의 삶이 의미가 있을것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갈 때는 현실적인 고려로 경제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경제학은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체적인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한 철학입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과 『도덕감정론』도 문학적인 요소가 풍부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어린 시절의 꿈과 현실의 접합점을 경제학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동안 금명간 써내려는 논문 준비하느라,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의 저작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파레토는 이탈리아 경제학자로 실증과학으로서의 현대경제학이 최우선가치로 삼는 효율 기준을 정의내린 사람이고, 그의 소득분배의 법칙도 유명합니다. 그는 “현실과 이론은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고 언명합니다. 파레토는 또한 수학적 방법으로 경제학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도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는 과학적인 이론을 정립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일상의 언어로도 현상 간의 인과관계는 설명할 수 있으나, 현상 간에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경제현실을 설명하는 데는 수학적인 일반균형분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현대경제학의 수학모델과 일반균형분석은 현실경제에서 유리됩니다. 지난 8월 말에 출간된 조순·정운찬·전성인·김영식 교수님 공저의 『경제학원론』 10판에서도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에서 기존 경제학의 “정교한 수학적 모형의 기본 가정과 복잡한 현실문제 간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처음 경제학을 접했을 때부터 학문의 길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현실을 설명하는 참된 이론을 세우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론과 현실은 원래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론의 가치를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높은 지위와 화려한 경력에는 매몰되면서 학식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이론을 만들어나갈 유인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 지식의 생산과 축적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흔히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는 누구나 이상을 꿈꾸지만, 나이가 들어 세상을 알게 되면 현실주의자가 되게 마련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IMF 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힘들어 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더욱 현실적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우리 대학이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이상을 꿈꾸며 현실을 바꾸어나가는 지식의 플랫폼 역할을 더욱 활발히 해나갈 것을 기대해 봅니다. 모두가 힘들어 할 때, 한 사람 한사람 각자에 내재된 소중한 자신의 힘을 일깨워주는 우리 사회의 힐링 캠프 역할도 해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석호 강사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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