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혜진 취재부장
한정된 지면 사정에 맞춰 기사를 쓰다보면 때로는 취재를 하며 느꼈던 온갖 소용돌이들은 기자에게만 남기고 오직 ‘사실’만 독자에게 전달해야할 때가 있다. ‘지난 ⃝일’로 시작해 ‘~했다’로 기사는 끝났지만 그 뒤에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삭힐 수도 없는 뜨거운 감정들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순간에는 학보사 기자로 활동한다는 것에 허무감을 느끼고는 한다.
 
마감에 쫓겨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던 어느 금요일. 나는 다시 한번 이 허무함과 마주해야 했다. ‘가장의 역할을 못하는 현실’ 때문에 사측과 협상에 들어간 ‘서울대 일반노조 기계·전기분회’(기·전분회) 시설노동자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이 없다던 그들은 이 75동 대학신문사로 직접 와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이야기에 묻은 서글픔은 7매 짜리 기사에 담기에는 너무나 컸기에 못다 한 이야기를 여기에 조금이나마 담고자 했다.
 
서울대에 간접고용된 시설노동자들은 다른 직원들과 달리 가슴에 네모난 명찰을 패용해야 한다. 명찰을 달고 있는 그들에게 누군가 업무지시를 내릴 때는 나이에 상관없이 그들을 ‘어이’라고 부르고 ‘이리 와서 이것 좀 해봐’라며 업무지시를 내린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부 단과대 근로자들은 한겨울에 냉·난방 시설이 없는 영상 1도의 사무실 안에서 온종일 오들오들 떨며 일한다고 했다. 셀 수 없이 열악한 근무환경 뒤에는 고용불안도 있다. 시설노동자들은 재계약을 할 때가 되면 고용불안에 떨며 지내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한 순간에 해고당하기도 한다. 무사히 살아남았다면 칸막이 없는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게 무시와 푸대접 속에서 한 달 동안 일하고 받는 돈은 129만원이다. 기·전분회 윤기석 회장은 이 금액을 ‘서울대입구역에서 혼자 고시원 생활하면 딱 맞는 돈’이라고 했다. 그들이 버는 돈은 ‘가장’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실제로 대학 시설노동자 중에는 미혼자가 많으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더 좋은 학습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지만 그들은 서울대 사람이 될 수 없다. 근무지는 서울대지만 직접고용한 것은 사측이기에 본부는 그들의 처우를 개선할 의무도, 임금을 올려줄 이유도 없다. 간접고용이라는 올가미 안에 그들의 열악한 현실은 그대로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시설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뿌리만 점점 깊어졌다. 『대학신문』이 다뤄왔던 시설노동자 문제 기사들을 살펴보면 본부의 답변은 한결같다. “검토 후 논의해 볼 예정입니다.” 이 말이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잔인한 말일까.
 
시설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궁극적인 해결책으로는 직접고용으로의 전환이 얘기되고 있다. 그러나 본부는 예산과 제도에 가로막혀 직접고용 전환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교정하고, 쾌적한 휴식공간을 마련해주는 일 등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본부는 그들을 위해 작은 대책부터 마련한 뒤 시설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기적 대책을 이제는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강의실 안에서 사회의 부조리함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 배운다. 그러나 강의실 창문 바로 밖에는 부조리함을 모두 등에 업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고의 상아탑이라는 서울대의 현실이다. 본부가 그들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때야말로 서울대가 진정 지성의 전당이라 불릴 자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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