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희 교수
국제대학원

요즘의 증세 논란, 복지 공약, 야당 장외 투쟁을 보면서 일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본의 총리는 지난 20년간 13명이 바뀌었다. 거의 매년 총리가 한번 바뀐 꼴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5년을 넘게 수상 자리에 있었던 일본 정치인이 두 명 있다. 나카소네 총리와 고이즈미 총리이다. 두 총리의 공통점은 공공부문의 개혁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꾀하면서 성장의 동력을 마련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나카소네 총리는 1970년대말 일본의 심각한 재정적자를 넘어서기 위해 행정개혁을 통해 세출을 줄이는 동시에 민간 기업의 활동을 돕기 위해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그는 “증세없는 행정개혁”을 외쳤다.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하기보다는 행정 및 공공부문의 철저한 개혁을 통해 혈세를 아껴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다음에야 증세를 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나카소네가 물러난 다음 총리가 된 타케시타는 소비세 3퍼센트 도입 법안을 관철시켰지만 자신은 리쿠르트 스캔들에 말려들어 총리직을 내려놓아야 했고, 자민당은 그 다음 해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상실했다. 자민당이 단독 과반수를 다시 찾아온 것은 올해 7월에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였다. 24년이 걸려서야 옛 영광을 되찾았다.
 

고이즈미 총리도 공공사업의 무분별한 확대, 지방 보조금의 증가, 고령화 사회로 인한 사회복지 비용의 확대로 인해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태에서 정권을 잡았다. 그도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고이즈미는 ‘구조개혁 없는 성장은 없다’고 외치며 성역없는 개혁을 주장했다. 세금을 마구 써대는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이른바 저항 세력들과 한판 정치적 전쟁을 벌였다. 일본 국민들은 정부 예산만 믿고 돈을 물 쓰듯 하는 부처와 공공법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려는 고이즈미의 손을 들어주었다. 고이즈미 총리가 총리직을 스스로 내놓을 때까지 50퍼센트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연유이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 후반 3년간 일본의 경제는 회복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고이즈미가 물러난 후 일본의 정계는 다시 국채 발행에 의존하는 공공사업을 늘려가자는 사람들과 국민들에게 많은 사회복지 관련 공약을 통해 인심을 사자는 사람들로 메워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세금을 쓰는 데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만약 재정이 모자르면, 세금을 올리거나 화폐를 더 발행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잠시 여당의 자리에 있었던 민주당은 수많은 무상복지 공약을 해놓고 나서는 국가재정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일부 공약 수정을 하는 동시에 결국은 국민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비세를 2015년까지 10퍼센트로 올리겠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복지 혜택은 고마운 일이지만, 공공개혁을 하기 전에 세금만 더 내달라는 민주당이 미워서 2012년 12월 총선에서 민주당을 거의 괴멸시키다시피 했다.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고 아베가 총리가 되자 이번에는 양적완화라는 화폐발행 증대를 통해 경제의 숨통을 트겠다고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돈이 돈다 해도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개혁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일본 국민들이 언제 자민당에 등을 돌릴 지 모른다.
 

어느 나라이건 국민이 바라는 것은 자기가 낸 세금이 잘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들의 조세저항이란 정해진 세금을 개인적으로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추진한 정당에 대한 지지를 집단적으로 철회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투쟁보다 감시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세금이 잘 쓰여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일차적 책임은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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