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재] 미국 앰허스트대 학부교육 조명

교양교육은 항상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화제의 중심에 있지만 많은 국내 대학들의 교양교육은 내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학부 수준에서 알찬 교양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국의 자유인문대학(liberal arts college)이다.

자유인문대학이란 기초학문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1천~2천명 가량의 소규모의 학부 과정만 개설돼 있는 대학이다. 이는 실용학문이 아닌 순수학문 위주로 밀도있고 심화된 교양교육에 집중해 ‘생각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고등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대학신문』은 여러 자유인문대학 중 가장 우수한 대학 중 하나인 앰허스트대(Amherst College)를 방문해 우리 대학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모습들을 조명했다.

앰허스트대는 182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앰허스트시(市) 지식인 및 성직자들에 의해 설립됐다. 183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예일대 다음으로 큰 대학이었지만 학생들에게 최고의 인문교육을 시키기 위해 대학원을 두지 않았고 19세기 후반 하버드대 등이 경쟁적으로 대학원을 만들며 외형을 키워 나갈 때도 학부대학으로 남았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윌리엄스대(Williams College), 웨슬리언대(Wesleyan College) 등과 더불어 미주의 가장 우수한 자유인문대학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앰허스트대는 현재 매사추세츠 주에서 세 번째로 오래 된 대학이며 2012년 가을 기준 1,817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유명한 동문은 미국 제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 소설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 등이 있다.

▲ 사진① 앰허스트대 채플힐(Chapel Hill)

얽매이지 않은 탐구정신을 기르다

앰허스트대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분야에 총 37개의 순수 학문전공이 개설돼 있으며 총 850개의 강좌가 제공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앰허스트대가 완전한 개방형 교육과정(open curriculum)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1학년 때 수강해야 하는 글쓰기 수업을 제외하면 모든 수업을 학생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학부 재학 중에 하나 이상의 전공을 선택하고 전공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이수하기만 하면 졸업이 가능하다.

마이클 라 호그(Michael La Hogue) 씨는 졸업 후 미군 ROTC 정보부로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그는 오스트리아인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문화적 영향으로 전공 분야를 독일학으로 정하고 자신의 진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컴퓨터 공학, 정치학, 경제학, 수학 등의 수업을 선택해 듣고 있으며, 자신의 종교인 통일교 공부를 위해 한국어 수업도 매 학기 꾸준히 수강하고 있다. 유창윤 씨는 처음에는 영화학 전공을 생각하고 입학했지만 수학, 물리학, 과학사, 컴퓨터공학, 건축학, 미술 등의 수업을 수강했다. 2년의 고민 후 그는 전공 분야를 최종적으로 물리학으로 결정했다. 그는 “여러 수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공을 정하기 전에 폭넓은 분야의 수업들을 수강하고 전공을 정한 후에도 전공 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을 훨씬 많이 수강한다”고 말했다.

학교에 원하는 전공이 개설되지 않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전공 분야를 직접 자유롭게 설계할 수도 있다. 앤드류 마우리(Andrew Mowry) 씨는 제2전공으로 앰허스트대에 없는 경제발전론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경제발전론을 “경제발전의 요인과 방해 요인, 소득분배, 경제계획 모형 등을 중심으로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학문”으로 설명하며 “학교에 전공으로 개설돼 있지는 않지만 정치학과 교수님과 경제학과 교수님의 연구 분야이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해 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박(Joe Park) 씨는 “천문학을 물리학으로 접근한 분야인 천체물리학 전공을 설계한 학생도 있었고 건축학 전공을 설계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바람에 기존에 없던 건축학 전공이 학교에 새로 개설되기도 했다”며 “학생의 개인적 관심사가 최대한 받아들여지는 제도와 학풍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긴밀한 교수-학생 관계

앰허스트대의 교수 대 학생 비율은 1대 8에 불과해 매우 낮은 편에 속하며, 모든 수업이 강사나 조교가 아닌 교수에 의해 직접 이뤄진다. 또 앰허스트대의 특성상 대형강의가 적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이 10~20명 정도나 그보다 적은 인원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앰허스트대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개별 지도가 다른 대학에 비해 매우 세심하게 이루어진다. 유창윤 씨는 물리학 전공 강좌들을 수강하면서 이 점을 특히 실감했다. 그는 “일반적인 물리학과 수업이라면 5~60명 대상으로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만 대부분의 전공 수업들은 교수님과 열 명 남짓의 학생들이 미리 풀어온 물리 문제들을 다시 풀어보며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며 “교수님이 논리의 단계를 굉장히 꼼꼼하게 짚어주셔서 많이 배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의사소통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는 의의를 밝혔다. 또 그는 국내에서 유명무실한 오피스 아워(면담시간, office hour)가 활발하게 이용되는 점을 지적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면담 시간에 교수님을 방문해 적극적으로 질의하고 진로상담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개인적 관계도 끈끈해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교수의 아이들을 돌봐줄 정도다. 마이클 라 호그 씨는 “독일학 교수님의 집에 자주 초대돼 바비큐 파티를 한다”며 “교수님에게 소개받은 교수님 친구분의 아이를 돌봐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학교 측에서도 TYPO(Take Your Professor Out)라는 제도를 통해 교수와 학생들의 한 끼 식사 비용을 지원해주는 등 교수-학생 간 관계 형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생각하는 인재’를 기르는 글쓰기 수업

글쓰기 수업은 필수과목이 단 하나인 앰허스트대의 유일한 1학년 교양 필수과목으로, ‘생각하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좌우명인 앰허스트대의 교육 전반에서 강조되는 사항이다. ‘법리학과 사회적 사고’, ‘에로스와 내면적 성찰’, ‘모차르트와 그의 세계’ 와 같은 다양한 주제의 수업 중 하나를 선택해 수강하면 주제에 대한 강의와 더불어 매주 2~3쪽 정도의 강도 높은 글쓰기 과제와 체계적인 첨삭 지도가 병행된다.

이민영 씨가 1학년 때 수강한 글쓰기 수업은 1주일에 1~2개 정도의 과제가 있어 특히 요구하는 바가 많은 수업이었다. 그는 “매주 많은 분량의 글을 쓰는 것이 상당히 버거웠지만 교수님들이 모든 과제를 자세하고 꼼꼼히 평가해 주셔서 배운 바가 많았다”며 “과제마다 글의 논리 전개가 제대로 되는지, 근거가 타당성이 있는지, 설명은 충분히 이루어지는지 장문의 글로 세세히 지적해 주셔서 내가 글을 쓸 때 비약하곤 하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 그는 “글을 쓰는 방법뿐만 아니라 글의 제재가 되는 내용이나 교수님의 연구 주제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며 “수업의 내용 자체가 깊이와 폭을 두루 갖추고 있어 자신의 적성을 아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5개 대학 컨소시엄(Five College Consortium)

앰허스트대는 근방의 네 개의 대학들(스미스대, 마운트 홀리요크대, 햄프셔대, 메사추세츠대)와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다. 이 컨소시엄 내의 대학들은 서로 커리큘럼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다섯 대학 어디에서든 강의를 듣고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앰허스트대의 학생들은 앰허스트대에서 제공되지 않는 외국어나 실용학문 수업을 듣기 위해 이 제도를 이용한다.

마이클 라 호그 씨는 컨소시엄 제도를 이용해 스미스대와 마운트 홀리요크대에서 한국어 수업을 꾸준히 수강했고, 앤드류 마우리 씨는 햄프셔대와 메사추세추대에서 스페인어, 전기공학, 광(光)공학 수업을 수강했다. 앤드류 마우리 씨는 “지리적으로 멀지 않지만 원한다면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도 있었고 그 대학의 교수와 면담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며 “관심이 있는 분야의 수업을 비교적 편리하게 수강할 수 있어서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학교를 집처럼, ‘레지덴셜 칼리지’

앰허스트대에는 소규모의 인원이 4년 내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제도가 있다. 1학년 학생들을 본 캠퍼스와 별도의 캠퍼스에 수용하는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 모형과는 달리 수많은 기숙사 건물이 캠퍼스 내부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전교생이 충분히 같은 캠퍼스 내에서 생활할 수 있다. 실제로 기숙사 건물들은 강의 건물 바로 옆에 있거나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식이어서 학생들이 불편 없이 통학하고 공부하고 있었다.

▲ 사진② 앰허스트대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직접 들어가 본 기숙사 건물들은 아주 안락하고 편안하게 꾸며져 있었다. 조 박 씨는 “학교가 4년 동안 학생들의 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학생들이 4년 내내 부대끼며 긴밀하게 생활하기 때문에 학교 바깥 거리에 누가 지나가면 우리 학교 학생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앤드류 마우리 씨는 “학교에서 숙식하며 생활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깊이 친해질 수 있었다”며 “앰허스트대에서 레지덴셜 칼리지는 구성원 간의 유대관계와 학문적 교류를 극대화하고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 사진③ 앰허스트대 재학 중인 학생들 왼쪽부터 이민영 씨, 앤드류 마우리(Andrew Mowry) 씨, 마이클 라 호그(Michael La Hogue) 씨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