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근관 교수
경제학부

교육에 있어 우선순위를 말할 때 이전에는 '지덕체'였다. 지식 함양이 우선이고 다음으로 인성과 덕성을 기른 뒤 건강한 신체를 기르는 게 교육의 목표였다. 체력이 국력이라던가. 어느덧 우선순위가 바뀌어 '지덕체'가 '체덕지'로 변했다. 몸이 튼튼해야 덕도 쌓고 공부도 한다.

우리나라 학생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거치면서 수영,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공부에 방해된다고 하나둘씩 운동을 접기 시작한다. 우리 청소년은 너무나 일찍 운동에서 손을 뗀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청소년은 찾아보기 힘들다. 잠도 덜 자고 운동도 덜 해서 번 시간으로 낮이고 밤이고 학교 및 학원 공부에 매달린다. 덕과 체를 희생하면서 미리미리 대학입시를 준비한다. 그 중 성공한 소수가 서울대 구성원을 이룬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재학생 셋 중 둘 꼴로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체지방과 근력 면에서 20대 서울대생의 수준이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일반인 50~60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없는 서울대생의 비율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였던가. 서울대생은 체육 과목의 가치에 대하여 응답자의 절대 다수가 긍정적으로 답했고 강좌의 확대 및 시설 개선을 원했다.

헌데 서울대의 운동 시설과 서비스의 공급은 늘어도 모자랄 판에 도리어 줄고 있다. 현재 서울대 재학생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 시설은 체육관, 대운동장, 야구장, 테니스장, 농구장 몇 군데 등이 고작이다. 포스코 체육관은 이용 요금이 비싸 이를 이용하는 학생은 드물다. 서울대에서 늘어나는 운동 수요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는데 서울대는 공급을 축소해서 수요를 잡겠다는 발상인가. 서울대 조직 내에 체육시설을 관리하거나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책임 있는 기관은 없다. 테니스코트의 경우 지난 20여 년간 바닥의 흙을 복토한 적이 없어 수많은 학생과 교직원이 다쳐 나갔다. 금년 들어 코트 개선을 위한 예산이 배정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지난 9월 초 『대학신문』에 따르면, 서울대 기초교육원은 최근 교양체육 과목인 스키, 보드, 볼링을 폐지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유인 즉, 수업 장소와 도구를 학교에서 지원할 수 없어 수업이 학교의 관리 범위 밖에 있고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초교육원의 문제해결방식은 참으로 편리하고 기발하다. 없는 시설을 마련하기는커녕 남의 시설이라도 빌려 근근이 유지해오던 수업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과연 이런 이유로 기존 과목을 폐지해도 되는가. 스키 수업의 예를 들어 보자. 그간 매년 천여 명의 학생과 수백여 명의 교직원 및 그 가족이 겨울방학을 이용해 진행되는 서울대 스키캠프의 혜택을 누렸다. 저렴한 비용으로 스키를 배우며 재충전의 계기로 삼았다. 이런 혜택은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담당 학과, 교수 및 강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제공되었다. 뭐든 세우기는 어렵고 부수기는 쉽다. 기초교육원은 창조보다 파괴에 비교우위가 있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체육은 건강 증진, 리더십 함양, 사회 적응력 제고 등 개개인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 형성에 큰 도움을 준다. 큰 틀에서 보더라도 체육은 건강수명 연장, 노령화 대비, 의료비 절감 등 많은 거시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기초교육원은 체육을 도외시하고 있다.

서울대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는 우리 학생의 정신 및 육체 건강을 지키는 데 주어져야 한다. 서울대는 지덕체가 겸비된 우리 사회의 엘리트를 배출해야 한다. 서울대가 건강해져야 우리 청소년과 우리 사회도 건강해진다. OECD 국가의 최상위권 대학 가운데 서울대처럼 엉망으로 체육 여건을 유지하는 대학은 없다. 서울대 집행부는 더 이상 체육을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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