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 이번 호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인권’, ‘노동권’, ‘야생동물’이라는 일련의 주제들이었다. 언뜻 기묘해 보이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가을 축제의 모토였던 ‘시선 공포증’과 함께 위의 주제들을 읽어보기로 하자.

타인의 시선은 원래 공포스러운 것이다. 타인의 시선은 평가하는 시선이며 특정한 규율의 내부로 ‘나’를 밀어 넣는 강제력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타인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바로 그 공포를 불러낸다. 그렇다면 축제의 모토로서의 ‘시선 공포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남의 시선이 어떤 의미를 감추고 있든 간에 그게 무슨 상관이야? 중요한 것은 타인의 눈 안의 심연이 아니라 바로 내가 만들어내는 심연이지!”라는 외침이다. 쉽게 말해,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원하는 대로 축제를 즐겨보자는 것이다. 이번 축제의 모토는 축제가 어떠한지가 아니라 축제를 즐기는 ‘나’가 어떠한지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 공포에 어깨를 움츠리는 인간의 모습과 인권, 노동권, 야생동물과 관련된 문제적 사안들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자주 회자되고 중요한 것이라 여겨지지만 이상하게도 늘 소외돼있다는 것이다. 소외란 세상으로부터 등 돌려져있는 것을 의미한다. 시선 공포증이란 결정적인 순간에 ‘나 자신’의 욕망이 뒤로 물러난다는 것이고, 인권과 노동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세상이 혹은 우리가 약자들에게 눈감고 있다는 것이며, 야생동물들이 무관심 속에서 죽어가는 것은 인간이 생명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의 시선이 내리는 엄중한 판결에 심하게 신경 쓰고 있거나, 거꾸로 타인의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하려 하고 있다. 여전히 세상에는 억압의 무게에 짓눌려진 이들이 가득하고, 청년들의—비단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노동권은 계약서에 그려진 글자 그림 이외의 별 것이 아니곤 한다. 야생동물들은 서식지에 침입한 인간들에 의해 까닭 없이 세상을 뜨고 있다.

언론의 위기에 대한 진단이 자주 내려진다. 이제는 모두가 정보의 공급자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기술의 발달로 인해 특정한 기관이나 매체만이 가질 수 있던 정보전달의 도구를 모두가 손에 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모두가 길을 잃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생각건대 취재란 이제 대중의 혼란스러운 아우성 속에서도 특별한 시선을 계발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앞서간 욕망을 좇는 시대에 언론의 특별한 시선이란 가장 낮은 자리, 소외된 자리, 특정한 ‘공포’에 의해 항상 빗나가는 바로 그 자리를 향하는 것이 돼야만 할 것이다. 『대학신문』 또한 학내 언론으로서, 어려운 일이겠지만 항상 가장 소외된 자리로 먼저 나아주기를 바란다. 정확히 그런 점에서 이번 호에서와 같이 침해받는 권리들의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윤대웅
철학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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