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홍배 교수
독어독문학과

 서울대 법인화 추진 당시 대학집행부는 ‘자율적인 대학 운영 및 개혁’과 ‘지속 가능한 재정기반 구축’을 위해 법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법인화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서울대 구성원 대다수는 아마도 집행부의 약속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인 출범 후 2년이 지난 지금 서울대의 모습은 애초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 같다.

먼저 ‘지속가능한 재정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법인화 당시 집행부는 총액예산제를 통해 대학의 필요에 맞게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오히려 법인화 이전보다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 당국이 ‘2012년 서울대학교 운영성과 자체평가보고서’(2013년 5월)에서 시인하고 있듯이, 여전히 국고출연금은 특정한 사업목적 내에서만 사용되도록 경직되게 운영되고 있다. 더구나 예산 확보를 위하여 총장과 주요 보직자들이 기획재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수십 차례나 설명회를 가졌다고 하는데, 이러다가 예산 지원을 빌미로 대학에 대한 관치(官治)가 강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여기에 더하여 국립대학 시절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법인세까지 부과되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법인화를 먼저 시작한 동경대는 법인세를 면제받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정부 당국은 서울대 법인세 폐지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올해 들어 단과대 예산이 일괄적으로 삭감되었고, 심지어 교양과목 강사료의 일부를 단과대학이 부담해야 할 형편이다. 대학의 기초교양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마저 쪼들리고 있다면 재정 압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 모든 정황에 비추어볼 때 법인화 이후 대학의 재정운영은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교직원 복지 차원에서도 서울대병원 진료비 감면혜택이 사라지는 허탈감만 안겨주었을 뿐이다. 학생등록금이 인상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미국 다음으로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운영의 자율성은 더욱 심각한 난제다.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는 자체 내에서 이사를 선임하는 폐쇄적인 자기추천의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30명의 총창추천위원회 구성에서 이사회는 3분의 1의 위원을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여섯 명의 총장예비후보 선정을 거쳐 세 명의 최종후보를 정하는 과정에서 그런 비율이면 캐스팅보트 수준을 넘어서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외부인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사회가 총장선출 과정에서 외부의 압력에 휘둘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최근 학사위원회와 평의원회가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한 의견 개진을 했지만 대학 당국은 이를 수용할 뜻이 없어 보인다. 교직원의 대의기구인 평의원회와 학사위원회가 의결기구가 아닌 심의기구로 위상이 축소되면서 이미 예견된 사태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담보해야 할 의사결정구조의 이러한 난맥상은 정부와 여당에 의해 날치기로 통과된 법인화법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대학 당국이 대학의 실정에 맞지 않는 법제도를 개선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대학의 자율적 운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법인화 초기부터 대학이 현상황에 순응하는 자세로만 나간다면 앞에서 제기한 우려들은 조만간 현실로 닥쳐올 것이며, 해를 거듭할수록 대학의 위상은 추락할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사태를 수수방관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대학 구성원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구들 사이에 책임과 권한의 분산이 이루어져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협치(協治)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럴 때만 학내 구성원의 의사가 결집되어 지금의 난국을 돌파할 동력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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