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은 편찬된 이후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에에 널리 퍼지며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각 나라에선 동의보감의 의의를 밝히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1766년 최초로 동의보감 건륭본이 간행됐다. 이 책의 서문엔 능어라는 사람이 동의보감 수집 및 건륭본 간행 경위를 밝히고 있다. 그는 “그 뜻은 천하의 보물을 천하 사람과 함께 이용하자는 것이니”라고 했는데 이는 당시 동의보감이 활용도 높은 의서였음을 증명한다. 그 후로 건륭본이 중국 여러 곳에서 재간되다 1890년 동의보감의 새로운 간본이 간행됐다. 이 간본에 대해서도 민췌상이라는 사람이 서문에서 “동의보감은 옛 서적을 수집해서 이를 이용하고 설명했는데, 그 조리가 분명하고 그 증거가 충분하여 의학자에게 도움을 주는 바가 크다”고 찬사했다. 이후엔 중화민국 상해석인본·대만 영인본 등의 판본들이 최근까지도 출간됐다. 중국의 추이정즈 교수(장춘중의학대)는 “종합의서가 이렇게 많이 출판된 사례는 중의학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동의보감의 인용을 통해 현재 사라진 중의학 문헌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동의보감을 통해 중의학의 체질이론이 발전할 수 있었다”며 동의보감이 중의학에 기여했다고 전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1724년 『정정동의보감』이라는 판본이 간행됐다. 주목할 것은 일본에서의 동의보감 재간 작업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것이다. 재간작업을 맡았던 미나모토 모토미치는 서문에서 “우리 대군께서 동의보감이 진실로 보민(保民)의 경전이요 의가의 보물이라는 것을 아시게 되어 친히 명을 내려 이 책을 인쇄하여 질병에 고생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면케 하시려는 뜻이다”고 했으며 이를 통해 당시 일본에서도 조선처럼 구휼책의 일환으로서 동의보감이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일본에서 1799년 다시 동의보감이 재간됐으며 이는 1890년 중국의 판본에 사용됐다. 일본 중의학연구소 히로미치 야쓰이 연구원은 “동의보감은 실상 발간된 직후부터 조선통신사를 통해 지식인들 사이에 전해졌으며, 이후 한글로 쓰인 향약 부분이 일본어로 번역되는 등 일본의 본초서에 도입돼 일본 의학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고 의의를 밝혔다.

그 밖에 추 꾸엉 뜨렁 전 베트남 국립전통의학병원장은 “동의보감은 19세기부터 베트남 의사들에게 중요한 실용서적으로 간주됐다”며 “동의보감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이를 번역할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국제적 흐름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이 우리나라의 문헌적 가치를 넘어 ‘동아시아의 보감’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 400주년 국제학술대회
지난 1일(토) 대한한의사협회가 주관한 동의보감 400주년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각국의 학자들이 참석해 동의보감이 자국에 끼친 영향을 논의했다. 상당은 '허준이 활약하던 시대의 일본 의학'을 주제로 발표하는 일본의 히로미치 야쓰이 연구원, 하단은 '동의보감과 중국 의학'을 주제로 발표하는 중국의 추이정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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