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빈곤 퇴치의 날’을 기념하여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2013년 한국은 노인 자살률 10만 명당 평균 79.7명, 노인빈곤율 45.1%라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또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전체 국민의 상대빈곤율은 2010년 18.1%로, 국민 6명 중 1명은 빈곤한 상태이다. 암 발병 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16%에 불과하지만 치료비를 걱정하는 사람은 31%에 달한다. 죽음의 고통보다 가난의 고통을 더 염려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 UN이 정한 빈곤철폐의 날을 앞두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빈곤을 해결하고자 하는 국가의 노력은 너무나 미미하다. 노인을 위한 복지지출은 OECD 평균의 1/4에 불과한 GDP 대비 1.7% 수준으로 꼴찌인 멕시코의 바로 뒤를 잇고 있다. 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자는 140만 명에 불과하지만 그 사각지대는 400만 명이 넘는다.

파기된 복지공약, 기초생활보장법 개악

확산되는 빈곤과 불평등, 불안을 반영하듯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복지 경쟁에 휩싸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불과 8개월만에 1년 전의 복지공약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손에 맡기기로 했으며 복지공약은 나라사정상 어렵다는 말로 후퇴와 파기만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 파기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는 말 한마디로 국면을 넘기고자 하는 한편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인생은 잘못 산 인생’이라며 가난에 처한 국민을 비하하고 낙인찍는 언사를 내뱉고 있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선을 통해 수급권자를 확대하고 사각지대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갈가리 쪼개 혜택의 수준을 낮춰 숫자만을 일부 늘리는 개악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마지막 사회안전망’이자 ‘전 국민의 기초생활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기초법의 취지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고, 보장의 수준과 선정기준의 수준은 민주적인 절차 없이 각 부처 장관의 결정에 따라 이뤄질 수 있도록 개정될 것이다. 빈곤층의 가족들까지 가난하게 만드는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해야 한다는 사회 여론이 높지만 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자꾸만 죽어가는 가난한 이들

2012년 수급자의 사망률은 전체 사망률에 비해 5배 높다. 그 중에서도 30대 수급자의 사망률은 11배 높고, 40대는 8배, 50대는 7배 높다. 건조한 숫자 속에 담겨 있는 삶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난달 신장질환을 앓던 부산의 한 50대 남성 수급자가 자살했다. 이혼 후 요양병원에서 홀로 살던 그가 딸이 취직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은 며칠 뒤였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딸에게 매달 100만원의 병원비를 의지할 수 없었던 그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모든 국민의 기초생활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왜 부양의무자기준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그 가족에게 떠맡기려 하는가? 가난한 이들의 가족은 왜 국가에 의해 빈곤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한국사회 빈곤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가난에 처하게 된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낮은 임금, 잦은 해고 등 노동을 통해 먹고 살기 어려운 문제와 모든 이들에게 불충분한 사회안전망은 결국 빈곤의 주된 원인이다. 즉,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여윳돈 이상의 위기가 삶에 발생한다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소수 중에도 소수에 불과하다. 이 소수를 제외한 이들은 누구나 가난한 삶의 비참함을 피해 죽음을 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죽음 앞에 놓인 이들과 이 죽음의 가능성 때문에 희망보다 불안을 먼저 배우는 사람들, 우리는 바로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빈곤을 철폐해야만 한다.

가난한 이들이 죽어가는 사회에서 아무도 안전하게 살 수 없다. 우리는 400일 넘게 광화문 역에서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농성을 벌여왔다. 400일의 영정사진은 도리어 4개가 늘어났다. 이번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에 우리는 가난 때문에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빈곤 없는 세상을 요구하는 ̒빈곤 장례식̓을 벌인다. 가난을 두려워하며 살지 말고, 가난을 함께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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