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영 교수
정치외교학부

‘갑갑~하다!’ 현 정치권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들의 대선 개입, 청와대의 검찰 수사 외압 논란, 여야의 ‘대선불복 대 헌법불복’ 공방, 이 와중에 실종된 각종 대선 공약과 민생 현안, 책임보다는 불통과 오불관언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듯한 대통령,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야 공세에 열 올리고 있는 여당, 별 성과와 뾰족한 대안 없이 거리와 국회를 오가며 투쟁 수위만 연일 끌어올리는 야당, 그리고 이제는 존재의 의미조차 없어진 듯한 진보정당…. 아니나 다를까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평가는 지난 9월 2주 최고치인 67%에서 줄곧 하향세를 보이다 이젠 53%로 하락해 지난 대선 득표율에 근접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대한 정당지지도는 각각 42%, 21%로 정체 내지는 소폭 하향세를 보이는 듯하고, 지난 총선에서 10%의 지지를 받은 바 있는 통합진보당은 2%로 바닥을 기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시민사회로 눈을 돌려보았다. 사실 한국 정치에 있어 위기의 순간마다 희망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정치사회(정치권)’보다는 ‘시민사회’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멀리 동학과 독립운동으로부터 4·19혁명과 광주 민주화운동에 이어 1987년 성취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에 이르기까지의 긴 역정을 지나 민주화 이후에도 시민운동과 촛불집회 그리고 최근 부상한 시민정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한국의 시민정치의 전통을 ‘회오리(vortex)의 정치’, 즉 원자화된 개인들로 이루어진 대중사회가 중앙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현상으로 비유하는 견해도 있다. 일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들불과 같은 운동의 정치라 폄하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의 시민사회가 중요한 순간마다 역동성과 응집력을 보이며 한국 정치발전의 동력을 제공해왔던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민정치의 가능성은 우리의 주위와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앙정치 수준의 큰 변화뿐 아니라 지방정치 차원의 참여예산제와 마을공동체 그리고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시민정치의 실험을 통하여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실험들은 시민사회의 자치 역량을 키우는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서 보다 큰 시민정치를 위한 주춧돌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가령 참여예산제와 마을 만들기를 통하여 축적된 사회적 자본과 거버넌스(協治)의 경험이 학습과 사회화의 과정을 거쳐 보다 큰 정치의 장으로 전이되고 확산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소위 ‘제2의 새마을 운동’이란 이름으로 위로부터의 국민운동으로 동원되거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잠재적인 정치적 우군을 만들기 위한 쟁탈전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희망은 우리 서울대 커뮤니티 안에도 있다. 최근 대학원생 기혼자 모임인 ‘맘인스누’는 모임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김세균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등 뜻을 같이하는 교내외 교수들이 교수·학생 모두가 조합원인 ‘노나메기 대안대학’을 세운다는 소식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단지 조합원들만의 필요 충족을 넘어 참여와 협동 및 사회적 기여 등 민주적·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협동조합의 시민 결사체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의 각성과 제도권의 정치개혁 물론 중요하다. 결정적인 국면에서 시민사회의 ‘저항의 정치’ 또한 중요할 것이다. 시민사회의 상시적인 감시와 비판의 역할도 필요하다. 하지만 시민정치의 희망은 우리의 지역, 마을, 직장, 학교 등 의외로 가까운 곳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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