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미얀마 출신의 K씨는 자국 내 소수민족 탄압을 피해 한국에 입국했다. K씨는 곧바로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심사를 신청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난민심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신청한 지 1년 5개월이 지나서야 불허통보를 받았다. 이에 불복한 K씨는 이의신청을 했고 생계를 위해 취업허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취업허가마저 불허했고 생계가 막막해진 K씨는 공사장에 불법 취업하게 됐다. 그러나 K씨는 한달 만에 적발돼 강제퇴거 명령을 받고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결국 K씨는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지난달 10일, 법원은 정부의 행정편의주의 태도를 꾸짖으며 K씨의 손을 들어줬다. 난민심사 신청자에게 별다른 생계지원을 하지 않은 채 불법취업을 빌미로 강제퇴거 명령을 내린 것은 행정의 획일성과 편의성만을 강조한 조치라는 이유다.

한국은 1992년 UN의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출입국관리법의 하위조항에 관련 규정을 만들었다. 난민신청자의 수는 난민을 처음 받기 시작한 1994년엔 5명, 2002년엔 34명, 2012년에는 1,043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난민의 개념이 모호하며 난민인정의 명확한 요건이 없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온 결과 찬반논란 끝에 지난해 2월, 이를 개선한 「난민법」이 제정·공포됐고 올해 7월 1일 발효됐다.

난민법이 발효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난민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난민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미온적이고 사회적 시선 또한 곱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분쟁과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은 그들의 새로운 터전에서도 여전히 국가적, 사회적 억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 그래픽: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우선 난민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태도는 소극적이다. 한국에 들어온 난민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난관은 난민심사에 있다. 절차가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급증하는 난민심사 신청자로 인해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7~8년이 걸리는 등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심사인력 부족과 난민에 대한 방관적 태도가 원인이다. 정부는 2005년까지 난민업무를 별도의 조직 없이 처리해 왔으며 2006년 국적·난민과가 설치됐지만 난민 전담인력은 겨우 3명에 불과했다. 난민법 시행을 앞둔 지난 5월, 정부는 뒤늦게 국적·난민과를 국적과와 난민과로 분리하고 난민과의 인력을 3명에서 8명으로 늘렸다. 심사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난민법은 난민심사 신청자에 대한 심사를 6개월 안에 진행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박정철 인권변호사(44)는 “담당인력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적다”며 “심사기간 상한선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난민심사 신청자에 대한 기본적인 생활 보장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형편이다. 이달 1일, 정부는 뒤늦게 난민신청자를 수용할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난민센터)를 인천 영종도에 설립했지만 이마저도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법무부는 난민센터 운영 매뉴얼 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며 또한 난민심사 대기자 1,700여 명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수치인 100여 명만을 수용할 계획이다. 난민을 집단수용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난민인권단체의 한 활동가는 “난민들이 모두 하나의 종교, 국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일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며 “정부는 난민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기보다는 기관을 만들고 보여주는 데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난민법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발효 시점인 7월 이전에 난민신청을 한 사람들은 난민센터에 입소가 불가능하다. 설령 입소했다 하더라도, 6개월 이내의 기간만 머무를 수 있다. 하지만 난민신청자들은 난민신청한 때로부터 1년이 지나서야 극히 제한적으로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결국 난민신청자들은 6개월의 ‘취업이 불가능한 공백기’가 생긴다. 소득이 없으니 정상적인 주거도 불가능하다. 심지어 취업허가는 정부의 재량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불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K씨 또한 생계를 위해 불법취업을 한 사례다.

난민의 사회적응을 위한 인적·물적 지원이 부족한 점도 난민의 어려움을 야기한다. 2013년 법무부의 난민 관련 예산은 겨우 20억 원이며 이마저도 19억 원은 영종도 난민센터에 투입돼 생계비 지원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난민의 재사회화를 돕는 기관도 없기 때문에 결국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방치된다.

정부의 무관심 뿐만아니라 사회적 인식 또한 난민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이다. 정부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하수처리장, 헬기장 등 혐오시설 주위에 난민센터를 설립했다. 영종도 주민들은 ‘외국인 집단촌이 형성돼 주민들이 치안 불안에 떨 수 있다’고 시위하며 난민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 난민과의 한 관계자는 “영종도 주민들의 난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아직 여러 수단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의 해명에 주민·시민단체 측은 “난민법이 제정된지 20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협의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의지의 부족”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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