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 1. “옛날 옛날에 나라를 돌보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세련된 옷 입기를 좋아하는 멋쟁이 임금님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교활한 재봉사 두 명이 찾아와 임금님께 어리석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기한 옷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임금님은 많은 돈을 주고 그들을 고용했답니다.” 지난 9월,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한복을 입고 패션쇼 런웨이에 깜짝 등장해 신선한 파격을 제공했다. 한 공중파 방송은 지난 6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보도하면서 그가 입은 의상의 색·디자인에 담긴 의미들을 자세히 리포트했다. 반면, 방문의 성과와 과제 등을 성실히 분석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통령 패션에 대한 과잉보도라는 지적에 대해 해당 방송사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더 강조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2. “재봉사들은 옷이 완성됐다며 임금님께 들고 왔지만, 임금님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렇지만 모자라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임금님은 옷이 멋지고 훌륭하다며 이걸 입고 거리를 행진하고 싶다고 말해요. 알몸인 상태로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임금님을 보며 신하들과 재봉사들은 찬사를 보냈어요.” 80년대 초반,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각 방송사로 하여금 전두환 대통령의 소식을 무조건 뉴스 첫머리에 내보내게 지시했고, 이로 인해 ‘땡전뉴스’라는 말이 생겨났다. 당시 장마기간을 전후해 외국 순방을 다녀온 전 대통령에 대한 앵커의 멘트는 다음과 같았다. “대통령께서는 오랜 가뭄 끝에 이 강토에 단비를 내리게 하고 떠나시더니, 돌아오시는 오늘은 지루한 장마 끝에 남국의 화사한 햇빛을 안고 귀국하셨습니다.” 며칠 전, 박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보도한 한 매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침부터 비를 퍼붓던 런던의 하늘은 … 박 대통령을 태운 왕실마차가 버킹엄궁에 들어설 때는 햇빛이 쨍쨍 비췄다.”

# 3. “임금님이 거리 행진을 하자 모여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이를 지켜보았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치자 군중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어요. 임금님은 부끄럽고 화가 났지만 더 당당히 걸어갔고, 신하들은 보이지 않는 옷자락을 들고 따라갔답니다.” 이번 유럽 순방에서 박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100명 안팎의 교민이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닙니다’라고 쓴 펼침막을 내걸고 집회를 벌였다. 이에 대해 이번 순방에 동행한 한 여당 국회의원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겠다”며, 채증사진 등 관련증거를 법무부를 ‘시켜’ 헌재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박 대통령은 프랑스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입니다”라고 언급했다.

# 4. 주요 국가기관들의 정치 개입 의혹이 잇달아 불거지는 가운데, 수사를 총괄하던 검찰총장이 마지못해 사표를 냈고, 담당 수사팀장은 정직 3개월의 중징계에 처해질 전망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행정부의 정당해산 청구에 더해 여당은 시민사회단체까지 강제해산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임금님, 조금 부끄럽지 않으세요?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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