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헌미 강사
정치외교학부

동계올림픽이 진행 중이던 지난 2월, 러시아 소치에서 러일 정상회담이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 일본의 토종 아키타견(犬)을 데리고 나왔다. ‘유메(夢, 꿈)’라는 개의 이름도 의미심장하지만, 두 정상 간에 오간 대화가 자못 흥미롭다. 아베 총리가 유메를 쓰다듬으며 좋은 견공이라고 칭찬하자, 푸틴 대통령이 “맞다. 그런데 가끔 사람을 물기도 한다.”라고 답한 것이다. 중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 아시아 각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아베의 행보에 대한 은근한 야유라고 해석했다. 그런가 하면 서방 언론은 고집 세고 공격적인 아키타견이 푸틴 대통령을 닮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푸틴의 속내나 어느 견종의 성질은 그렇다 치고, 꿈은 때때로 사람을 무는 게 아닌가 싶다. 현실을 외면하고 완고하게 꿈을 좇는 사람은 쓰라린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니 말이다. 1961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사이드 르윈」의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는 안 팔리는 포크 싱어다. 기타 한 대가 전 재산인 그는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노래한다. 1집 앨범 제목 ‘날개가 있다면(If We Had Wings)’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이상주의자다. 돈을 벌어 생활을 안정시킬 궁리도 없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진솔하게 부르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한 예술가에게 날개는 없고 세상은 냉혹하다. 영화의 절정은 주인공이 자신의 2집 앨범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의 한 곡을 부르는 장면이다. 그야말로 자기 내면의 절절한 목소리를 피토하듯 뱉어내지만, 르윈은 오디션에서 탈락한다. 상품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내내 고양이가 한 마리 등장한다. 주인공 르윈이 뜻하지 않게 떠맡았다가, 잃어버려서 찾아 헤매기도 하고, 여행 중에 슬쩍 내버리기도 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더니 어느새 집에 돌아와 있는 고양이. 그 이름은 상징적이게도 ‘율리시스(Ulysses)’다. 율리시스는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영웅이다. 그러나 10년 동안 힘겨운 전투를 치른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기까지 또 다른 10년을 바다에서 헤매며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던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목숨이 아홉 개라는 고양이처럼, 갖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율리시스는 마침내 자신의 왕국을 되찾는다.「인사이드 르윈」은 주인공이 두들겨 맞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두들겨 맞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가 노래를 계속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얼핏 등장하는 밥 딜런을 통해서, 외면받던 포크송의 전성시대가 바야흐로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암울한 실패담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주인공의 운명은 열려 있는 셈이다.

인생은 비정하지 않고는 살 수 없지만, 비정만으로는 살 가치가 없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탐정소설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꿈으로 도피하는 잉여의 삶도, 현실에 매몰되는 속물의 삶도 구원을 주지는 못한다.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에 발을 딛고 더 나은 새로운 현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올해는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다. 2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둔 1939년, E. H. 카는 『20년간의 위기』에서 유토피아적 이상과 객관적 현실 분석의 양면을 갖추지 못한 정치학은 결코 국제 평화에 기여할 수 없다고 갈파했다.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 테러에 이르는 국제정치의 역사가 증명하듯, 율리시스의 여정이 보여주듯, 평화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다. 3월의 관악에는 ‘입시전쟁’에 이제 막 승리한 신입생들도 있고, ‘취업전쟁’의 와중에 진정성을 고민하며 방황하는 재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꿈과 현실의 이분법에 속거나 상처받지 않으면서, 끈질기고 유연하게, 길 위의 모험에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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