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우성 강사
건축학과

필자는 차를 타고 갈 때에나 혹은 비행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곤 한다. 대개 무한한 수의 건물들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듯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하여 얼마나 우월하기에 이렇게 많은 건조물을 세우고 생활하는지 인간에 대해 경외심이 생길 정도이다. 도시의 병원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유치원과 학원, 학교에서는 교육이 일어나며 관공서에는 행정과 정치가 이루어지고 박물관 공연장에서는 문화를 누리게 된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법원을 거쳐 교도소를 가게 되고 살다가 몸이 망가지면 병원을 거치고 사망하면 장례식장을 거쳐 납골당을 가게 된다. 어느 건축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춘 거대 도시급 건물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 건물에 거주하면 죽을 때까지 건물을 나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생활은 건축 그리고 건축으로 이루어진 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해외여행은 주로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일까?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이 주된 곳도 있지만 오래된 건축과 문화, 그리고 도시를 보는 일이 주요한 곳이 대부분이다. 높은 건축물 위에 올라가 도시를 보거나 수천 년 전에 지어진 불가사이한 건축물을 보면서 그들의 기술과 노력에 놀라고 감동을 받는다. 건축물이 곧 중요한 관광자원이요 문화유산인 것이다.

우리는 근대건축을 접하고 소비한 역사가 매우 짧다. 서울과 지방의 많은 도시들은 50년대 이후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변화하였고 농사짓는 평야와 산지가 거대한 신도시가 되는 상전벽해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가장 싼 재료로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넓은 공간을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우리의 도시를 채워갔으며 불과 수십 년 만에 이러한 건축물들이 우리의 도시를 채웠으며 또 쉽게 철거되고 세워지고 있다.

한때 미래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나오는 도시를 보자. 그 도시의 각종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은 상상을 뛰어 넘지만 기존의 건축물들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즉 과거 수백 년 동안 인류가 세워온 건축물들은 향후 수백 년 동안 존치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2세기에도 우리 도시의 모습은 외견상 크게 달라지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토목 구조물과 건축구조물은 한 번 지어놓으면 고치기도 힘들고 바꾸기도 쉽지 않으며 바꾸려면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우리는 건축과 도시의 소비자로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사용후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사는 집, 우리가 걷는 거리, 우리의 도시환경, 우리의 교실과 캠퍼스… 우리가 얼마나 만족하는 지 무엇이 불편한지, 과연 선택의 폭은 있는지 등 다양한 잣대로 우리의 환경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중 평면은 매우 발달하여 왔다. 그 이면에는 주부들 즉 소비자들의 끊임없는 민원이 있었다. 요즘 아파트 건설사에서는 모델하우스에 잠정적인 주부들을 평가단으로 모시고 꼼꼼한 의견을 청취한다. 이를 바탕으로 모델하우스에서 수정할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만큼 소비자의 욕구가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아파트의 내부에만 몰입되어 있는 관심을 외부공간과 외관, 거리, 도시로 확대해 보자. 거리와 도시는 국가의 얼굴이요 건축문화를 가늠하는 잣대다. 정체성 없는 신도시보다 역사와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오래된 골목, 낡은 집들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자. 우리의 건축과 도시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것을 소비하고 누리는 사용자의 평가는 우리의 건축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사용자의 수준이 높아져야 수준높은 건축과 도시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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