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부터 『대학신문』을 포함한 학내외 언론이 서울대의 농활대 중 몇 반이 성폭력 문제 때문에 부분적으로 철수하게 된 경위와 최근의 농활 실태를 보도하기 시작한 이후로 아직까지 혼란과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가 제기된 전후 상황에 대해서 관련 농활대에 대한 비난이 보도의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문제의 비중에 대한 감각이나 문제를 다루는 균형감이 꼭 정당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찌 됐든 이러한 비난을 계기로 한국 대학생들의 문화에서 소중한 전통으로 보존되어 왔던 농활 자체가 전례 없는 문제제기의 대상으로 부각되게 되었다. 왜 농활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근본적인 물음들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농활의 전통은 근대 한국의 학생운동사와 중첩된다. 지식청년들의 귀농활동은 이미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오늘날 대학생들의 농활과 비슷한 모습은 1960년대 후반 이후 활발해진 대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전통은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시혜적인 느낌을 주는 ‘봉사’라는 말을 빼고 그냥 ‘농촌활동’이란 개념으로, 사회운동적인 함의가 강화된 형태로 계승됐다. 이렇게 정착된 ‘농활’은 1980년대에 이르러 학생운동의 급진화와 대중화에 중요한 초석이 됐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농활을 통해서 사회적 책임의식을 배웠다.

 

 

 

이렇듯 농활이란 ‘한국의 학생운동’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무게의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전통이 그렇듯 농활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전통은 아니었고,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강조점, 형태가 변모해 왔다. 대학생들을 포함해서 사실상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이 ‘농민의 자식’이 아닐 수 없었던 시대의 농촌봉사활동 또는 농활과, 인구 통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자신을 농민의 자식으로 규정할 대학생의 비율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농활이 같을 수 없다.

 

 

 

최근에 성폭력 문제가 농활에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인정하고 고민하고 대화해야 한다. 성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학생들과 농민들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있다면 이는 시간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풀어나가야 할 문제지, 이러한 문제가 농활에서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고 나서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농활의 의미와 위상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농활의 두 주체인 학생회와 농민회는 이 도전에 진실하게 임하여 농활의 또 다른 국면을 열어주기 바란다. 사회적으로는 이러한 노력에 대한 우호적 지원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대학과 대학생의 사회적 책임감을 주문하면서(서울대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돌출한 문제를 빌미로 사회적 책임감 함양에 기여해 온 대학생의 농활 자체를 매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학생들은 이번 일을 뼈를 깎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 더욱 겸허한 마음가짐을 다져야겠다. 이를 통해 우리 학생들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한 단계 성숙하고 사회기여활동이 다양한 방향에서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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