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주 교수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3월 초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전체회의는 작년보다 12.2% 증가한 8,082억 위엔(약 1,320억 달러)의 2014년 국방예산안을 승인했다. 국방비 증가에 대한 외부의 우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전국인민대표대회 대변인 푸잉(傅瑩)은 “중국의 국방비와 국방력이 증가해 평화를 위협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중국의 국방력이 약해지면 평화로워진다는 이야기냐”고 반문했다. 이제 강한 중국이 국제평화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주장으로 읽힌다. 중국의 굴기 여부가 낡은 질문이 되기는 했지만 반어법으로라도 강한 중국을 받아들이라고 주장이 등장한 것은 세상이 많이 변화했음을 실감시킨다.

동아시아 ‘G2시대’의 도래

중국의 국방비 증가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두자리 수 증가율을 기록해왔다. GDP 대비 국방비의 규모도 아직 1.4% 정도로 미국의 3.4%보다 훨씬 낮다. 중국의 국방비 증가가 지구적 차원의 힘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수준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음 두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첫째, 중국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7.5%로 정했음에도 국방비 지출은 12.2%를 증가시키겠다는 데서 경제대국에 이어 군사대국으로 부상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동안 중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선과 주변 지역의 불안정을 고려하면 방어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국방비를 GDP대비 3%까지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의 기대가 단기간 내에 충족되지는 않겠지만 현재 수준의 증가만으로도 중국은 곧 군사대국의 지위를 확보할 것이다. 반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력을 구축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둘째, 미국은 2010년부터 ‘아시아로의 축 이동(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rebalancing)’ 전략 등을 내세우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행사해온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이러한 의도가 관철되기는 쉽지 않다. 미국 정부가 최근 의회에 제출한 2015회계연도의 예산안에서 국방비는 약 4,960억 달러로 2014년 회계연도 5,515억 달러에 비해 10% 가까이 줄어들었다. 예산적자 축소를 위한 지출감축프로그램으로 국방비는 앞으로 더 줄어들 예정이다. 미국과 중국의 국방비 규모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그러나 중동, 중앙아시아, 동유럽 등 다른 지역의 분쟁과 갈등에도 대응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전략적으로 힘을 집중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군사적 경쟁을 하는 것은 버거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국방부 차관보 카트리나 맥팔랜드(Katrrina Mcfarland)는 3월 4일 재정적 제약으로 ‘아시아로의 축 이동’ 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중국은 경제대국으로서의 부상에 이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가고 있다.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G2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다.

한계에 직면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경분리 전략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긴밀한 정치군사관계를 맺어왔다. 미국은 서유럽에서 NATO라는 집단안보협력기구를 통해 군사적 헤게모니를 유지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개별 국가들과 쌍무동맹을 맺는 방식으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사회주의권의 확장을 저지했다.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과 함께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제교류에 나서며 지역질서에 새로운 변화가 발생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막대한 시장을 보유한 중국과의 협력에 적극 나섰는데, 정치군사적으로는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해왔다. 일종의 정경분리 전략인데 이 역시 중국의 빠른 부상으로 유효성을 상실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경제교류가 정치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한국도 중국과의 교역규모가 이미 미국 및 일본과의 교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정치도 경제를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중국의 종합국력이 빠르게 증가하며 상당한 힘의 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게 된 주변 국가들이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대응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먼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관계에서 ‘정랭경열’(政冷經熱, 정치관계는 차갑지만 경제관계는 뜨겁다)이라고 불리는 국면을 출현시키기도 한다. ‘원교근공’(遠交近攻, 멀리있는 나라와는 친교를 하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한다)이라는 고사성어를 따르는 대응인데 문제가 없지 않다.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악화에 따른 치를 경제, 군사적 비용을 미국이 같이 감당해주리라는 보장이 없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한다)”라는 고사성어가 이러한 상황을 지칭한다. 따라서 중국과 정치군사적 협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다음 대안으로 등장한다.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상한 중국이 자신을 계속 우호적으로 대할지를 확신하기 어렵고 단기적으로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부작용도 있다.

동아시아에서 당분간 중국과 미국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이 지속될 터인데, 주변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딜레마를 피하기 어렵다. 상황을 잘못 관리하면 개별 국가의 안전에 심각한 후과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중미 사이의 전략적 경쟁과 상승작용이 발생하면 지역평화도 큰 위협에 받게 된다. 2010년 이후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난사군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의 상승작용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이 나타난 바 있다.

새로운 동아시아의 상상

여기서 중국과 미국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떤 선택도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책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선택이 불필요한 상황을 만들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강한 중국의 등장이 당장 동아시아 질서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패권안정론에 따르면 패권이 교체되는 시기에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고 당장 지역의 갈등을 고조시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서는 강한 중국이 패권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평화질서를 상상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미국과의 군사적 경쟁이 아직은 버거운 중국과 자신의 미래 지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미국 모두 패권에만 집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평화질서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동맹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역내 국가들이 같이 참여하고 공동안보 및 협력안보의 원칙에 기초한 다자안보협력체제가 동아시아 평화질서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되기까지 넘어야 할 벽은 높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에서 패권 전환기에 발생했던 병자호란, 청일전쟁, 한국전쟁 등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평화를 위한 새로운 상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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