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아직 입학 전인 중고등학생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자유의 공간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젊음으로 가득한 활기찬 공간, 한없이 부러운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의미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대학은 지식을 만들어내고, 축적하는 ̒상아탑̓, 지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요즘 대학은, 어쩌면 취업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과정이 돼버렸다. 모두들 개인의 일에만 몰두하고, 당장의 이익 없이는 단체 행동을 하지 않는다.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혹은 개인의 취미를 개발하는 동아리들이 활발해지는 반면, 품은 많이 들지만 알아주는 이는 적은 학내 언론이나 순수 동아리 참여가 줄어드는 모습이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학부 시절, 나 또한 학내 방송국에서 활동하면서 점점 학내 소식에 무심해지는 학생들의 모습에 발을 동동 굴렀다. 과거보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졌고, 놀 거리와 즐길 거리가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학교라는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학생들은 학교 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대학신문』 등 학내 기관들도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이 학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 『대학신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더 많은 학생들이 신문을 읽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학생들이 읽고 싶어 하는, 흥미 위주의 글을 싣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지난 3일 발간된 개강호 『대학신문』 ‘대학신문을 읽고’ 코너에 ‘대학신문에는 읽고 싶은 글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글을 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언론의 역할은 읽고 싶어지는 신문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론직필에 있기 때문이다.

학교 신문에서 읽어야 하는 글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 신문이 독특한 정체성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학교 바깥에 수많은 미디어가 있고, 놀 거리, 볼 거리가 즐비한 상황에서 학교 신문은 어떻게 - 기성 언론과 구분되는 -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대학신문』의 장점은 학교 안에 있다는 것,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언론이라는 데 있다. 이 점을 고려해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예컨대 보다 넓은 사회상을 지면에 담기 위해 학외의 사건들을 학생의 시선으로 참신하게 재해석할 수 있다. 학생들에 대한 인터뷰나 조사를 다루는 코너를 넣어 학생 사회를 조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학신문』의 정체성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른 동아리나 학생모임과 협력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학교 안에 또 다른 작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신경 쓸수록 『대학신문』의 힘은 커진다. 『대학신문』을, 그저 이름만 유지하는 학내언론 중 하나로 남게 할 것인지 아니면 읽고 싶은, 동시에 읽어야 하는 신문으로 만들 것인지는 운영진에게 달려있다. 기성 언론들도 변화를 꾀하는 시대다. 학교 안에 있다는 이유로 멈춰있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자. 앞으로 『대학신문』이 온몸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재원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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