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전문위원
인권센터

올해 1월 초 2주간 '인권과 아시아' 국제인권강좌를 서울대 인권센터 주관으로 열었다. 한국을 포함해 20개국 39명이 참여했는데, 대부분 인권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연구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유럽, 북미, 아프리카 출신의 참가자들도 있었는데, 아시아 지역의 인권 문제와 이에 대응하는 인권 개념 및 제도의 발전은 아시아만의 관심사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아시아를 이해하면서 다양한 인권 주제를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강좌의 취지였다. 강좌 내내 열의를 보여준 참가자들을 통해 이러한 강좌에 대한 갈증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인권과 아시아'라는 주제로 국제인권강좌를 기획하게 된 개인적 동기는 영국에서 인권을 공부하던 시절 싹텄다. 내가 있었던 대학은 인권 교육 및 연구에 있어 대표적인 기관 중 하나로, 연구자들은 제네바, 뉴욕에서 열리는 인권 관련 주요 유엔회의에 전문가로서 참석하였고, 현지 조사나 세미나를 위해 인도, 팔레스타인, 우간다,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브라질, 칠레 등을 방문하곤 했다. 그 대학은 인권 연구자에게 매우 좋은 공간이긴 했지만, 인권 기준을 적용하고 실효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인권 현장’과는 지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너무 멀리 있단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안전한 논의의 장을 벗어나, 정말 필요한 곳에서 인권이 실효성을 발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그곳에서 진행되는 많은 토론의 말미에 늘 등장하는 주제였다.

경제사회적 현실과 공동체의 가치 규범이 각기 다른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보편적 인권을 누린다는 것의 의미,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지속적인 토론거리였다. 하지만 유럽, 아프리카, 미주 대륙을 들여다보는 수업이 있는 한편,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는 지역 내 다양한 사회들이 경험하는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데 인권이 어떻게 해석,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수업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한국 외 아시아 지역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때부터,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팔, 태국,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아시아 이웃들이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기업들의 아시아 진출이 증가하고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오는 아시아인들의 수가 늘면서 아시아의 이웃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해졌다. 전쟁, 권위주의를 거쳐 짧은 시간 동안 민주화와 사회 발전을 이뤄낸 사회로서 한국에 대한 동경, K-Pop과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환호도 있지만, 저임금 강요, 폭력적인 노동 탄압, 가난한 나라 출신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돈 벌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의 모습을 띄어가는 것에 대한 반감이 공존한다. 반면, 한국은 우리의 이웃 아시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물질적인 기준으로만 평가될 수 없는 다양한 가치와 삶의 풍요로움에 대해 서로 배우면서, 좀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영감을 주고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시아의 인권 현실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논의하고 교류할 수 있는 교육 및 연구의 장에 대한 갈구는 이러한 문제의식들에서 비롯되었다.

인권을 열쇠말로 아시아의 사회제도, 규범 및 사람들의 삶에 대해 묻고 대답하고 얘기 나누어야 할 질문들은 무수히 많다. 아시아 지역 각 나라들에서 식민주의라는 역사적 경험이 어떻게 유사하게 혹은 다르게 나타나며 인권 현실에 영향을 주었는지,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발생한 인권 침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서 아시아 지역 민중들의 인권현실은 어떻게 변화했고 각 사회의 대응 방식에는 어떤 유사성과 차이가 있는지, 아시아에 공존하는 다양한 가치규범들 중에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라는 가치를 내재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반대로 그러한 인식의 확산을 어렵게 하는 전통적인 규범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아시아는 더 이상 국경 밖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되어 존재한다. 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위치에 대해 성찰하면서, 아시아 이웃들과 인권에 대해 협력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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