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에 취약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공영성’을 위협하다
정치권력에 취약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공영성’을 위협하다
  • 권순희 기자
  • 승인 2014.04.06 0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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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이 관영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두 공영방송사가 지난달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끝장토론 생중계를 급작스럽게 결정하면서 중계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인 편성제작회의까지 생략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시민들은 KBS와 MBC가 청와대의 입을 자처하며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충성 경쟁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은 지난 이명박정부 때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의 비영리 인권감시단체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당시인 2011년 한국을 ‘언론 자유국(free)’에서 ‘부분적 언론 자유국(partly free)’으로 강등시켰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2014년, 한국은 여전히 ‘부분적 언론 자유국’이다.

◇‘국민의 입’ 공영방송=공영방송은 국영방송 혹은 관영방송과 다르다. 국영 혹은 관영방송은 국가의 강력한 관리와 통제하에 있으며, 정부 예산을 주된 재원으로 삼는다. 국영·관영방송은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정권의 입장을 과잉 대변하기 쉽다. 반면 공영방송은 정부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독립적인 별도의 공적 규제기관에 의해 감독을 받으며, 국민이 공영방송 사업을 위해 납부한 수신료를 재원으로 삼는다. 공영방송은 이와 같은 특징을 바탕으로 권력이나 자본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공익과 여론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른 매체와는 달리 방송 분야에 공영 제도가 마련돼 있는 이유는 공공재인 전파의 희소성과 방송의 막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윤석민 교수(언론정보학과)가 2009년에 실시한 미디어의 여론시장 지배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지상파 TV 3사의 여론 지배력은 50%로 나타났다. 다른 매체에 비해 방송이 여론 형성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 놓을 경우 정치권력이나 경쟁력 있는 자본이 방송을 독점하고 소수의 제한된 이익을 위해 방송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엄정한 공적 규제를 받는 공영방송 제도를 두고 민주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봄 개편을 준비 중인 KBS와 MBC는 올해도 어김없이 공영성 강화를 개편 방향으로 내세우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 고취, 사회적 약자 배려 등 매년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두 공영방송사의 개편은 역설적으로 방송의 공영성이 구호에 그치고 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정권의 영향력에 취약한 공영방송 지배구조=MBC 사장 선임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 정권에서도 반복됐다. 지난 2월 21일 MBC를 관리 감독하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정권의 입맛에 맞춰 안광한 전 MBC 미디어 플러스 사장을 MBC 사장으로 선임하고, 부사장과 보도본부장을 측근 인사로 충원하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MBC 노조는 즉각 반발하며 본사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사 사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이 재현되는 이유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가 정치적 영향력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는 내부 감독기구와 집행기구로 이루어져 있다. 두 기구는 공영방송사의 활동을 감독하고 방송사를 운영해 나가는 핵심 조직이다. 그런데 이러한 각 기구의 인적 구성이 집권여당에게 전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어 공영방송사 입장에선 정권의 방송사 장악을 막아내기 어렵다.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은 공영방송사의 외부 감독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정부 편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됐다. 방통위의 상임위원들은 KBS와 방문진의 이사회 구성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임위원은 모두 5명인데 이 중 3명에 대한 추천권이 법적으로 여당에게 주어져 있다. 이를 통해 정부와 여당은 공영방송사 이사회 구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방통위를 통해 각 공영방송사의 이사회를 정부에게 유리한 조직으로 만들었다. KBS와 방문진의 이사회는 각각 KBS와 MBC의 최고 의결기관이자 내부 감독기구로 공영방송사를 감독하기 위해 설치된 별도의 독립기관이다. 원칙적으로 내부 감독기구인 이사회는 정부와 여당의 개입을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KBS 이사회는 11명의 이사 중 7명이, 방문진 이사회는 9명 중 6명이 여당 추천 인사로 구성돼 있어, 각 이사회는 여당 인사만으로도 주요사항을 의결할 수 있다. 사실상 이사회는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서중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는 “KBS와 방문진 이사회의 여야 인사 비율은 별도의 법적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 굳어진 것”이라며 “7대 4나 6대 3의 비율은 방통위의 여권 인사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선에서 야당 추천 몫을 인정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편 집행기구는 최고 의결기구가 결정한 사항을 실행하는 기구로 그 중심에는 공영방송 사장이 있다. 사장은 방송사 조직 구성과 임직원 임면,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는 등 공영방송의 운영을 총괄한다.

바로 이 사장 임명과정에도 방통위와 이사회를 장악한 정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법에 따라 KBS 사장은 이사회가 임명을 제청하고, MBC 사장은 방문진 이사회가 선임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정권에 유리하게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정권에 우호적인 인물이 사장으로 선정되도록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정부·여당은 이렇게 임명된 사장을 통해 방송 보도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결국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을 총괄하는 사장이 정치적으로 낙점된 탓에 KBS와 MBC의 제작·보도 자율성과 공정성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KBS의 시사프로그램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편의 방송이 갑작스럽게 연기됐던 것을 들 수 있다.

◇공영방송의 ‘공영성’을 위해=외국의 공영방송사들은 지배구조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먼저 주요국의 공영방송사들은 내부 감독기구에 사회 내의 각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 다수를 제도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의 독립적인 규제기구는 BBC 트러스트다. BBC 트러스트는 총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4명을 지역대표로 선출한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경영위원회라는 내부 감독기구를 갖고 있다. NHK 경영위원회 역시 12명의 전체 위원 중 8명을 일본의 8개 지역 거주자 중에서 선출하고 있다. 독일의 ARD와 ZDF는 감독기구에 해당하는 방송평의회에 정당, 의회, 노동조합, 경영자단체, 학교 등 각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자를 포함시키고 있다. 이들 공영방송사의 내부 감독기구는 일반 국민들도 참여하는 실질적인 공적 규제기구로, 구성원의 상호견제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의 개입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사장 선임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법제도 주목할 만하다. 영국은 공영방송 관련법으로 영국 국왕이 부여하는 칙허장(Royal Charter)을 두고 있다. 칙허장의 규정에 의해 BBC 트러스트는 사장(Director-General)의 임명권을 부여받는 동시에 사장 임명 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사장 선임에 관여하는 주체들이 칙허장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덕분이다. 이는 사장 선임 때마다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정치권의 개입을 막을 공신력 있는 대응 수단이 없는 한국과 대비된다.

강상현 교수(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는 “현재 우리나라의 인선구조도 가급적 다양한 집단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며 “당장 과반수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사장 인선이나 이사회 구성 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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