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기용 건축가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사무소 신축 설계를 맡게 됐을 때의 일이다. 그는 우선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새로 지을 건물이 어떠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주민들 대부분은 그 큰돈을 들여 뭐하려 새 건물을 짓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그가 재차 삼차 묻자 목욕탕이나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까운데 목욕탕이 없어 일 년에 서너 번씩 버스를 대절해 멀리 떨어진 온천을 다녀온다고 했다. 그는 주민들의 바람대로 목욕탕을 면사무소 건물 내에 집어넣었고, 마을 사람들이 편리하게 그 시설을 이용하게 되면서 신축 건물은 주민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지난 3월 21일 개관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물’, ‘외계 침략자의 우주선’ 등 찬반이 엇갈리는 이 건물을 짓는 데 무려 5천억 원에 이르는 예산이 투여됐고 한 해 운영비로 320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모든 비용을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했는데 건물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관람료 7~8천 원을 내야 한단다. 건물 설계 당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기는 한 걸까? 2007년 4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디자인 산업의 메카’를 짓기 위한 설계안을 공모했다. 이 현상공모에는 내로라하는 국내 건축가 4명과 해외 건축가 4명이 초청됐다. 서울시가 위촉한 심사위원은 7명이었는데 이 중 과반수인 4명이 외국인이었다. 외국 건축가의 설계안이 우대받을 가능성이 높은 구성이었고, 결국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이 선정되기에 이른다. 이라크계 영국인인 그의 눈에 한국이란 나라, 서울이란 도시, 동대문이란 공간은 어떻게 비쳐졌을까? 그가 과연 이곳의 삶과 역사가 갖는 의미를 잘 살려낼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이 항간을 배회했지만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통로는 어디에도 없었다.

DDP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시민들과 소통할 의지가 없음을 공공연히 표명하고 있는 공공건축물들이 서울 도처에 널려 있으니 말이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사당은 권위적인 거대한 열주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앞에 신전 같은 계단을 세웠다. 일반 시민들은 이 계단에 올라갈 수 없으며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뒷문을 이용해야만 한다. 문화 역시 아무나 누릴 게 아니어서 세종문화회관의 엄숙한 위용은 그 앞에 선 ‘신민’을 주눅 들게 만들며, 국립극장은 먼 산 중턱에 있고, 예술의전당 역시 큰길 건너편에 세워져 시민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3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서울신청사는 건축가 100인이 선정한 최악의 현대건축물 1위에 등극했으며, 세빛둥둥섬은 쇠락한 유원지의 오리배처럼 한강 위에 둥둥 떠 있다.

▲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일각에서는 서울이 명품도시가 되려면 DDP같은 건물이 20개는 생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 훌륭한 건축물이 많이 들어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시장의 치적을 과시한다거나 시민의 의견을 배제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공모 과정이 보장돼야 하며, 그 속에 시민사회의 활발한 참여 또한 포함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 이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철학이 논의돼야하고 공유돼야 할 것이다. 건축가 서현 교수는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들춰보면 과거의 증언이 들려야 한다”고 말했다. 삶과 역사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그것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명품 건축물들이 세워지길 기대한다.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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