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험기간도 책상 앞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매번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나고 며칠간 추가 구조 소식을 기다렸지만 안타까운 소식만 전달됐다. 사실을 전달해 주지 않는 언론과 무능한 정부에 화를 내기도 했고, 유언비어와 자극적 주장이 난무하는 SNS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나에게서 가장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병폐와 악습이 사고를 내놓고, 어른들 말 잘 듣던 아이들은 객실에 대기하며 추위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어른들이 잘못했다. 그런데 난 뭘 잘못했지? 같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 막연한 죄책감은 들었지만, 어른도 아이도 아닌 대학생인 나는 무엇을 미안해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저 복잡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일차적 원인은 선박의 무리한 증축과 화물 과적으로 좁혀지고 있다. 배가 침몰할 때 거꾸로 뒤집어진 것은 객실을 늘리기 위해 한 층을 더 올려서 배 윗부분이 밑바닥보다 무거워진 탓이라고 한다. 이틀간 선수 밑 부분이 물에 떠 있던 것은 에어포켓이 아니라 화물을 더 싣기 위해 평형수를 뺐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원인과 다를 게 없다. 이윤을 위해 안전을 포기한 것이다.

사고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고위공직자들은 진도에 내려가 바보들의 행진을 하고 돌아왔고, 관료들은 지휘체계 없이 허둥대며 대통령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정부는 상황이 안 좋다는 말만 반복하더니 유가족이 청와대로 올라가려 하자 신속하게 저지했다. 대통령의 간접사과를 거절한 유가족에게 제대로 된 사과는 못 할망정 당당히 유감을 표했다. 무능한데 권위적이기까지 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제멋대로 굴던 언론은 드디어 대형 사고를 쳤다. 언론은 재난 상황일수록 신중하고 정확하게 보도해 사고 수습을 위한 건설적 여론을 형성해야 했다. 하지만 속보 경쟁에 치우쳐 사실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정부 발표를 그대로 보도했다. 더 극적인 사연을 만들기 위해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그러는 동안 국민의 알 권리는 철저히 농락당했다.

며칠 전 새벽, 시험공부를 하다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게 됐다. 내가 탄 택시는 신호를 어기고 과속을 했다. 하지만 집에 조금 더 빨리 가고 싶었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택시는 하필 단속에 걸렸지만 택시 기사와 경찰이 몇 마디를 나눈 후 나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지적된 문제들은 이렇게 우리 사회 곳곳에서 겉모습만 다르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사태를 지켜보며 막연히 슬퍼하고 미안해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세대의 어른이 돼야 하는 대학생으로서 어른들의 이러한 잘못을 물려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지금의 어른들처럼 미안해해야 할 일이 또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마치고 서둘러 안산으로 향했다. 도시는 조용했고 사람들은 차분히 한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헌화를 하고 나오자 희생자에게 쪽지를 남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미안합니다. 어른들의 잘못 물려받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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