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신재
경제학부·09

 졸업을 축하합니다. 가을에 학교를 떠나시는 여러분들 중에는 저보다 1년 늦게 학교에 오신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떠나시는 여러분이 선배님들입니다. 어떤 집단이든 그곳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시야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니까요. 집단 뿐 아니라 시기도 그렇지요. 학교라는 공동체, 학부생이라는 시기, 지금까지 여러분과 저의 공통된 시공간이었던 그 지점에 대해서 분명히 무언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배님들 각각에게 그 발견이 무엇이 될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그 발견은 무언가를 완결지음으로써 얻게 되는 자격일 것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 비로소 날아오르기 시작하듯이, 모든 해석과 의미 부여, 가치판단은 사후에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발견된 완결, 끝난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은 새로운 시작의 준거로써 기능하기 때문에, 지금 끝나고 있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전체로부터 어떠한 결론을 이끌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4년 이상의 시간, 그렇게도 찬란하다 하는 20대의 이 시간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곳에서 내가 추구해온 것은 무엇이고 결국 무엇을 남겼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자격이고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이고, 어쩌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큰 중압감으로 닥쳐오는 과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통해 얻을 대답은 분명 이 시간들을 살아내어 온 선배님들의 자격이고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4년의 시간이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결론이 만족에 가깝든 반성에 가깝든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완결도 낼 수 없는 것이고, 완결을 낸 이야기는 전적으로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 이야기가 선배님들께 새로운 힘과 시작의 원천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각자에게 각자의 삶에 따른 이야기와 완결이 존재하듯이, 공동체도 하나의 완결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가령, ‘2014학년도 가을에 졸업하는 서울대학교 학부생’ 전체의 이야기와 완결이 존재할까요? 그렇게까지 집단을 특정짓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2000년대 후반에서 10년대 중반 사이에 재학했던 서울대학교 학부생의 공동체를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공동체가 우연찮게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잠깐 모였다가 흩어진 집단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 특정한 ‘텍스트’를 공유했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개인의 완결 뿐 아니라 공동체의 완결을, 일관된 해석과 가치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아주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싶은 것은 저 또한 이제 곧 떠날 이 공동체가 앞으로의 제 삶에서 하나의 든든한 준거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긍정적으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어쩌면 학교를 떠난 후에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공유해 왔음을, 또 우리가 공유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 또한 완결을 지은 사람에게 주어진 발견일 것입니다.

먼저 떠나시는 여러분이 여러분 각자 뿐 아니라 이 공동체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발견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발견들이 활발히 일어나고 적극적으로 소통되면 좋겠습니다. 공동체가 마련해줄 수 있는 삶의 준거는 분명 저뿐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공동체의 이야기 즉 역사는 개인의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한 자산이니까요. 그리하여 제가 여러분과 가지게 된 인연이 각자의 삶을 지탱하는 데에 유익하게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 내용이 만족스럽든 만족스럽지 않든, 선배님들께서 이곳 관악에서 보낸 시간은 그 자체로 전리품과도 같은 소유이고 자산입니다. 하지만 삶은 분명 그 속성상 각자에게뿐 아니라 서로에게 속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자산과도 같은 선배님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새로운 시작이 아주 신이 나고 즐거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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